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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Dec 09. 2016

부지런하며 여유로운 이곳, 섬.

제주도 '애월낙조'

 제주도에 왔다는 소식에 두 사람이 노래를 보냈다. 한곡은 'to the Rescue'란 노래, 또다른 한곡이 '애월낙조'였다. 첫번째 노래는 해질녘 해안가를 걷는 동안 듣게 되었다. 겨울 바다의 조금은 거친 파도 소리에 나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더해졌다. 바닷 바람에 빨라지던 발걸음이 조금씩 늦춰졌다.


@ 곽지과물해변 까페, <지금 이순간>


 낙조를 내다본 뒤에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두번째 노래를 듣는다. 바다 전망이 좋은 까페에서 우연히 만난 장관이 그대로 눈앞에 그려진다. 내가 어떤 풍경을 만날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림 같은 노랫말을 따라 낮에 본 것을 되새긴다. 앞으로 이 노래를 찾아 들으며, 제주도 애월의 일몰을 그리게 되겠다.

 잠이 태연하게 쏟아진다. 첫날은 낯선 길을 찾아오느라, 무거운 짐을 챙기느라 피곤했다지만  둘째날 초저녁부터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누가 곁에서 잠을 부추기는 것 같다. 며칠 잠을 굶은 것처럼. 먹고 싶은대로 먹고, 눕고 싶은만큼 눕고. 천천히를 살고 싶어 내려왔던 게 생각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 숨쉬는 것이 편안해진만큼 눈이 감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바람 소리인가 했더니 파도 소리라 한다. 4인실 1층 침대에 바닥처럼 누워 그 소리를 듣는다. 해변가에 누워 있는 것만 같다. 몇년 전 다이빙을 배울 때 숙소 침대에 누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 익숙한 곳에선 느껴본 적 없는 무서운 편안함이 있었다. 나는 길 위에서 가장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우습게도 그런 역마살이라도 끼어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다. 떠돌아 다닐 운명을 타고 났다면 덜컥 겁부터 나는 것이었다.


파도 소리에 바람 소리가 섞인다.

바깥 바람은 세차고 내가 누운 바닥은 단단하다.

어찌되든 날아가거나 무너질 일은 없다.

밤새 파도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부지런하며 여유로운 이곳,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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