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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Dec 11. 2016

이미 치른 표값

어디서 출발했는지 나만 알고 있다

애월에서 섭지코지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었다. 제주시 방향으로 버스를 탔다. 첫날 내려온 그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동쪽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찾았다. 하루에 몇대 오지 않는 버스. 우물쭈물하다가 놓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가까이 보이는 여행객에게 물었다. "여기서 표를 사야 하나요?" 급한 마음이면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물어본 여행객은 매표소를 가리키며 표를 사야 한다고 대답해주었다. 


현금 3,300원을 내고 버스표를 샀다. 하지만 버스에 오르고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카드를 대고 탈 수 있는 버스였다. 더군다나 내가 타고온 버스에서 환승도 가능한 것이었다. 새로 산 표가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몇 백원이면 올 수 있는 길을 몇천원 더주고 가게 된 것이 아쉬웠다. 왜 환승이 될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내가 돌고 돌아온 길은 왜 새로 갈 길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 어디가 시작점인지 나만 알지


새로운 표를 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기까지 돌아오기 위해서 이미 값을 치뤘다. 누군가에게 묻는다고 해서 가장 좋은 답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반대편에서 돌아온 사람에게는 환승이라는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 그걸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1시간 쭉 타고 내려온 버스에서 계속 새로산 버스표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돌아온 길이 있다. 나와 똑같은 길을 돌아온 사람은 없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길로 '환승'이 가능한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값을 치뤄 표를 사야 하는지. 나만 정답을 알아낼 수 있다. 남한테 물어봐서 들은 대답대로 따르다보면 내가 지나온 길의 가치를 까먹게 된다. "이 친구 게으른 사람이구만. 비행기는 항상 뜬다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떠나기를 망설이는 청년에서 한 어르신이 해준 말씀이다. 이번이 첫번째 승차인지 아니면 환승인지 나만 알고 있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내 생각보다 비싼 값을 치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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