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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Dec 11. 2016

도깨비 방망이 같은 소리들

다들 한마디씩 하는 돈에 관한 이야기

<자본주의 Capitalism: A love story>, <빅 쇼트 Big shot>, <마진 콜 Margin call>, <투 빅 투 페일 Too big to fail>, <안시이드 잡 Inside Job> 석달 동안 다섯편의 영화를 죽 이어 보았다. 기왕 한 편의 영화를 볼 것이라면 이 다섯편을 연이어 보길 바란다는 추천평이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시기를 다룬 다섯 편의 각기 다른 영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을 둘러싼 5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 자본주의, 모기지 사태 이전에 돈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5가지 엇갈리는 시선들을 쫓아본 시간이었다. 

이 다섯 편 가운데 하나를 보기 시작했다면, 다음에 볼 영화를 고르는 것은 쉽다. 먼저 고른 한 편을 제외한 나머지 넷 가운데 하나. 그 다음엔 셋 가운데 하나. 마지막엔 남은 2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만큼 한편한편 몰입감과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이야기들이었다. 더이상 같은 맥락의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지금엔 5편을 모두 봐버린 것이 아쉬울 정도다. 어떤 영화를 먼저 보는지 상관없이 동일한 시대, 동일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들이 씨줄 날줄처럼 솜씨좋게 엮일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6시간동안 돈에 관한 책을 번역했다. 대만 출신 저자는 부자는 왜 부자인지,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지. 부자의 습관과 가난뱅이의 습관이란 알기쉬운 비교를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 돈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관점이었다. 돈과 금융, 축재(蓄財)에 대한 기초상식이 부족한 내게는 노골적이지만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설명법이었다. 만족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이는 평생 가난뱅이의 삶을 살 뿐이다. 가난한 사람은 궁지에 몰려서야 돈을 벌 생각을 한다. 쌀독에 들어선 쥐가 발밑의 쌀을 바먹다 독에 갇히게 되는 모양새다. 뒤이어 흥미진진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제 근거 사례로 등장한다. 

책 번역은 삯바느질이라고 했다. 이 책 한권을 번역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들든 내 손에 쥐어질 돈은 자본이나 부(富)라고 부를 수도 없이 적을 것이다. 부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번역해서 받는 대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에서 배운 것들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될까. 마법의 보따리라도 열어보고 있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자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가난뱅이의 궁색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자가진단을 하면서 혼자 재밌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에 따르면 취직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돈을 빌려서라도 사업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가 등장하는 동화책이라도 읽고 있는 기분이다. 

친구 커플이 제주에 내려 온다고 한다. 당장 내일 비행기로 내가 있는 숙소까지 찾아온다는 소식에 하루종일 씨름했던 번역 작업에 속도가 올라간다. 자본주의의 실체를 보여주겠다는 몇 편의 영화를 봐도, 한참을 돈에 대해 떠드는 책을 읽어도 모르겠다. 나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하는 시간은 피곤하고, 훌쩍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는 친구를 생각하면 그 일의 무게가 전에없이 가볍게 느껴지고. 현실적인, 실체를 가진, 그만의 법칙대로 모이고 움직인다고 하는 자본이라는 게 뭔지 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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