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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Nov 22. 2016

어차피 이 글만 남을 것

2인칭의 중요성

 타인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를 곁에 두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지하철에서 영화관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이 아닌,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비추는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각자의 삶은 이미 빠듯해, 예정되지 않은 만남을 갖기는 나 역시 어려워진 때문이라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지나는 길에 들렸다는 손님이 전에 없이 반갑고, 빠른 시일 내에 나 역시 그가 사는 곳 근처를 우연히 지나야겠다 마음을 먹게 된다. 조직을 떠나서도 끊기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는 찾아보기 점차 어렵다. 이것도 30대 40대가지나면 생각보다 단순하게 정리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타인을 통해 자신을 건설해 나간다.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내 모습과 내가 내뱉은 말과 언젠가 선물한 책이나 적어 보낸 엽서. 나조차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은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 남아 거꾸로 나를 재구성한다. 오랜만의 만남과 통화와 짧은 메시지를 통해 나에게 다시 비춰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럼 어쩐지 나는 그 모습을 진짜 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찬찬히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시간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사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열일곱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과 스물 한 살의 나를 만난 사람. 스물 셋의 나와 어울렸던 사람과 얼마 전에 나를 알게된 사람은 서로 다른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잠깐 머물렀던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 자주 가는 동네 식당의 종업원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그들 앞에서는 그들이 나를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서있으려 애쓴다는 사실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를 서울 한복판의 호프집에서 다시 만나도 나는 여전히 방랑객처럼 사는 모습을 보이려 힘이 들어간다. 다큐를 찍으며 만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인 것처럼 떠든다. 스터디를 하면서 만난 사람, 책 모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들이 나를 기억하는 모습을 유지하려 애를 쓰게 된다. 애를 쓴다는 것이 이미 나 자신의 모습과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 말한다면. 한 사람을 구성하는 성향이나 가치관, 본질 같은 것들은 생각보다 수명이 길다는 사실을 짚어주고 싶다. 그것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버리거나 개성 안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한 사람 안에 남아 그를 규정하고, 그의 삶을 이끌고, 그의 육체와 정신을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도 잠시 잊고 있었던 낯선 자신의 모습을 타인을 통해 잠시나마 환기하는 시간은 더없이 귀하다. 그것을 이정표 삼아 다시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내가 어떤 관계들을 만들고 그들이 어떤 나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만들었는지에따라 앞으로 내가 가꾸어갈 나의 모습이 이중 삼중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그렇다. 두려운 것은 나를 끈질기게 비춰줄 거울같은 사람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것이다. 내 생각보다 가족, 동네친구들, 학교 동기, 직장,소모임 등 사회적 관계의 수명이 훨씬 더 짧아지고 있다. 더 이상 그들과 공유하고 있는무언가가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생활 반경은 전에 없이 빨리 바뀌고. 그런 타인들과 계속해서 만나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어지는 삶의 방식이 일반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2인칭의 관계들이 으레 소중히 여겨야할 '전통적인 유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한 개인을 꾸준히 따라 비춰주는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사라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만큼 애쓸 필요도, 반성할 이유도 하나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때 되면 거울 앞으로 돌아와야지” 내가 닮고 싶은 언니가 그 역시 존경하는 선생님께로부터 들은 말이다. 내가적은 일기장 역시 그것을 지나온 시간의 나에게 있어 타인이 된다. 하루하루 매 순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아서. 오랫동안 손에 끼고 적어온 일기장을 펼쳐 읽을 때마다 나라는 건축물을 새로 쌓아 올리는 기분이 든다. 나의 바깥에서 나의 어떤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한 모든 것은 거울이 된다. 그 중에서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그만의 의지를 가진 누군가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 된다.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는 때가 있다. 변덕스럽고, 이따금 완전히 해체되었다 재구성되기를 반복하는 내 마음대로 바뀌는 무엇이라면 아무런 의지도 자극도 되지 못할 것이다.


 100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의 연인은 나를 끊임없이 따라 비추는 거울이었다. 내가 가진 수많은 모습들을 이따금 나에게 다시 되돌려주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인으로 남아 있어 주었다. 그에게 뱉은 말대로 행동하고자 애썼고, 그가 비춰준 나의 모습대로 살아보자 수없이 다짐했다. 20대의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건 8할이 타인과의 끈질긴 인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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