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별장
워크 or 라이프: 일과 삶의 분리
마지막으로 양양 별장을 찾은 지 6주가 넘었다. 요즘 울컥울컥 화가 올라오는 게 별장에서 주말을 보낸 지 너무 오래된 탓인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여름은 물론 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2주에 한 번, 3주에 한 번은 그곳에서 주말을 보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별장생활을 시작한 뒤로 '균형'보다 '분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신적인 분리를 위해 어느 정도 물리적인 거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게 됐다. 차를 타고 3시간은 꼬박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약 180킬로미터의 거리가 나의 삶과 일을 분리하는 차단막 역할을 한다.
강변북로 11km-올림픽대로 2.7 km-서울양양고속도로 151km를 달리면 양양이다. 올림픽대로까지는 롯데타워가 줄곧 보이다가 서울을 벗어나면 함께 달리는 자동차들의 행렬만 보인다. 금요일 밤에는 미친듯이 차를 모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얼른 서울을 벗어나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보드를 차 위에 매달거나, 꽁무니에 카라반을 달고 달리는 승합차도 많지만. 외제차, 스포츠카, 캠핑카 할 것 없이 강원도 방향으로 쌩쌩 달린다. 급하게 차선을 바꾸는 모습에서 운전자들의 급한 마음이 전해진다. 저 사람은 얼른 서핑샵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싶나보다. 어떻게든 12시 전에 바닷가에 도착하고 싶나보다. 그런 생각들이 달리는 차 뒷모습만 봐도 보이는 것 같다.
왜들 그렇게 '열심히' 가는 걸까. 일반 커튼과 암막 커튼의 차이라고 할까. 금요일 밤에 퇴근해서 서울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봐도 해방감은 있다. 주말 내내 번화가를 돌아다니든, 영화관이나 까페를 가든 '어느 정도' 일로부터 멀어진 느낌은 든다. 하지만 캄캄한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의 아파트에 도착해 몸을 누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시간대로 건너왔다는 안도감을 준다. 누가 갑자기 급한 전화를 걸어도 택시를 잡고 달려갈 수 없는 정도의 거리쯤 되니 오히려 안심이 되는 것이다. 빛이 새어 들어 오지 못하게 암막커튼을 치듯 온전히 나의 시간대를 살 수 있다. 강원도에서 보내는 주말은 차단된 소음만큼이나 고립된 느낌 덕분에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자유롭다.
왕복 6시간. 길이 막히면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강원도를 하루 반나절 시간 보내자고 가는 게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차가 없으니 렌트카를 빌려야 하고, 기름값에 몇 끼를 사먹어야 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은 나도 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보내는 주말도 비싸긴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일요일 저녁이면 피곤해지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에너지가 들었다. 양양에서의 주말 역시 48시간 똑같지만 일단 베이스 캠프인 아파트에 짐을 풀고 나면 인근의 강릉, 속초 일대를 연남동이나 망원동처럼 골라 갈 수 있다. 큰 마음 먹지 않고도 설악산을 오르거나, 한계령 휴게소에서 눈구경을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집의 편안함과 동시에 여행지의 일탈을 즐길 수 있는 게 좋다.
일요일 저녁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고 강릉 시장에 마지막 남은 만석 닭강정 2박스를 사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서울 집에 도착해 빨래거리를 내놓고 샤워를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일상과 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된다. 월요일이 반갑다기보다는 "아 이제 다시 돌아왔네"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양양에서의 삶은 그대로 계속되고, 서울에서의 또다른 삶이 흘러가는 것이다. 곧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 곳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 때문에 덤덤해질 수 있나보다. 다음 주말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