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먹으러 갑니다 (2박 3일 중 1박의 식단)
금요일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엔 양양에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어렵다. 술집이 아닌 이상 밥을 먹기 어려워 우리가 자주 찾는 것은 '족발'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빠져나갈 때쯤 미리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해두면 도착 시간에 맞춰 따끈한 족발을 픽업할 수 있다. 족발집 바로 옆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과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 컵라면 그리고 과자 몇 봉지를 사서 아파트로 직행한다. 비몽사몽간에 도착해서도 매운 족발에 맥주 한잔 다 마시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별장에서의 주말은 한밤 중 족발에 마늘 냄새로 시작된다.
죽은듯이 자고 일어나면 잠깐 이곳이 어딘지 생각하고 하얀색 천장을 올려다 본다. 출근 시간쯤 눈이 떠졌으면 한 번 더 잠을 잔다. 배가 너무 고프거나 화장실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누워 있다가 침대에서 걸어나온다. 아침으로 지난 밤에 남겨둔 야식과 컵라면을 먹는다. 요구르트일 때도 있고, 샌드위치일 때도 있다. 평소보다 기운이 있는 날엔 아파트 밖까지 걸어나와 아침상을 찾는데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휴게소 식당 <영숙이네>를 자주 간다.
생일날 미역국도 <영숙이네>서 먹었다. 성게미역국이나 해물라면이나 두부김치나 모든 메뉴가 훌륭한 곳이다. 에너지를 다 끌어다 양양에 도착하고 나면 맛집이고 뭐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 최곤데. 그렇게 찾아간 식당이 맛집이었다. 백 여명은 쉽게 앉을 정도로 넉넉한 식탁에 기사문 해변이 그대로 내려다 보이는 통유리가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감자무침부터가 맛있어서 허겁지겁 밥을 집어먹게 만드는 곳이다. 가득 차려진 국과 반찬에 밥을 떠먹으면서 해변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용하고 넉넉하고 평화롭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옆 휴게소 편의점에서 메로나를 하나 산다. 바닷가 편의점답게 제주위트에일이나 광화문 맥주, 왠만한 외국 맥주들이 종류별로 있다. 그 중에 한 캔과 봉지 과자 하나를 골라들고 바닷가로 걸어 나간다. 마시고 먹고, 먹고 마시고 따끈해진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잠 대신 술에 취해가기 시작한다.
토요일 정오의 해변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핑을 하러나온 서퍼들이나 강아지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나가는 통통배로 활기찬 풍경이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느긋하게 걷다가 적당한 곳에 앉아 맥주와 과자를 마저 털어먹는다.
몸이 노곤하게 풀릴 때쯤 심심해진다. 그러면 아파트로 돌아가 수트를 갈아입고 물안경을 챙겨 나온다. 보드를 하나 빌리거나 맨몸으로 바다에 철벅철벅 걸어들어간다. 아직 차가운 물에 그제야 정신이 들면 물에 둥둥 떠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선크림을 발랐지만 소용 없을 것 같은 햇볕이 얼굴을 내리쬐지만 그대로 둔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가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가 내쉰다. 몸을 돌려 바닷속 구경을 하다가 또 심심해지면 보드에 올라탄다. 서핑보다는 물놀이에 가까운 두어시간을 보내고 나면 피곤해진다. 그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다. 입고 벗기 어려운 수트를 한번 갈아입고 나면 이미 충분히 배가 고파온다.
오늘날의 양양이 이만큼 사람들로 북적이기까지 죽도 수제버거집 <파머스 키친>의 공이 7할은 된다고 생각한다. 물놀이를 마친 사람들은 홀린 듯 기름진 음식과 맥주를 찾아나선다. 그럴 때 눈에 보이는 두툼한 패티에 따끈하게 구워진 빵 냄새는 식욕을 엄청나게 돋궈준다. 여기에는 서울에서 먹던 삼겹살, 치킨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 나는 지금 이것을 먹어야만 한다. 지금 이것을 먹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베이컨치즈버거+어니언링+맥주의 위험한 조합이지만 조금의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대기표를 받고 음식을 기다리는 짧지 않은 시간에는 커다란 리트리버 두 마리를 구경하면 된다. 물 흐르듯 순조롭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게 된다. 하지만 더부룩하거나 질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서울에서 줄어들었던 식욕이 이곳에 오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서울에서는 일주일에 두어번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분식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만다. 자고 나면 더부룩한 느낌에 전날 먹은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후회하곤 한다. 나는 아마, 제대로 먹고 마시기 위해 별장에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