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를 배워라. 배워두면 돈이 되더라. 내가 아는 젊은 여자 중에 악착같이 잘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땅을 사라. 건물보다 더 돈이 된다.”
아버지는 그래도 딸이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응원한다는 감동적인 말도 남기셨지만. 서른을 넘긴 지금 더 와닿는 말은 앞 문장이었다. 경매를 해라. 땅을 사라. 동네 도서관 1층 휴게실에 앉아 진지하게 딸의 미래를 걱정해 내뱉은 말씀이었다.
<싱글맘 부동산 경매로 홀로서기>
내 돈 주고 산 책 중에 가장 노골적인 제목이다. 새벽 출근을 해 할 일을 마치고,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지난 며칠 동안 경매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정신없이 봤다. 워낙 급한 성격에 스스로 얼마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
먼저 새로 알게 된 정보는 경락자금대출. 경매 부동산의 경우 낙찰가의 7~80%까지 대출이 된다고 한다. 등기부등본에는 현재 누가 그 집을 소유하고 누가 돈을 빌려주고 있는지 각각 갑구와 을구에 적혀 있다. 소유권을 명시하는 부분의 이름이 ‘갑’구란 문장을 읽고 건물주가 갑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다. 경매 물건의 권리분석을 하고 직접 임장을 다니고, 법원에 나가 낙찰을 받은 뒤 명도를 위한 내용증명을 보내는 법까지 대충 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인이나 선배들에게 하나씩 물어봤다면 물어보다 지쳤을 내용들을 쭉 훑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창신동 집을 구하면서 매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부동산을 구입하는 방법은 한창 고민했었다. 주택담보대출부터 직장인신용대출, ‘김미경 팀장’ 일수 대출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었다. 등기부등본을 떼는 일, 보는 일, 기본적으로 ‘안전한’ 부동산인지 확인하기 위해 눈앞이 깜깜해진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거의 전적으로 모든 정보를 타인(공인중개사 아저씨, 집주인 아주머니, 주택금융공사 직원)에게 의지하며 내 인생 가장 큰 액수의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의 자산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건 어쩌면 그만큼 운이 좋은 인생이었단 뜻이었다.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깊은 함정 중에 한 가지 종류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당장 경매투자에 나서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경매는 흥미로운 투자 방식이다. 누군가 채무 관계를 감당하지 못해 국가의 소유로 넘어간 자산을 법원이 중재자가 되어 새로운 소유자를 찾는다. 감정평가액수와 별개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무 관계가 얼마나 남아있느냐를 꼼꼼하게 따져 사람들은 경매에 응할지 결정하는데. 감정평가액에서 남아있는 빚을 제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정해진 날짜에 경매가 진행되고 아무도 구입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면 유찰. 그대로 다음번 경매날짜까지 넘어간다. 슬쩍 훑어본 법원 경매 사이트에는 11차례 유찰된 10평짜리 상가가 눈에 띄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사연' 있는 부동산을 구입하는 게 경매였다. 가벼울 수도 있고, 무거울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당하고도 남는 것이 있을만큼의 가격을 꼼꼼하게 결정해 입찰가를 적어낸다. 1만원 한 단위에도 낙찰자와 2순위가 갈릴 수 있다. 좋은 물건엔 수백명이 몰리기도 하고. 지금 우리나라 경매시장은 20대부터 70대까지,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부터 전문투자회사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뛰어든 보편적인 재테크 현장이 되었다.
한때 모기지 사태를 다룬 이야기에 꽂힌 적이 있다. <마진콜>, <빅쇼트>,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등 실물경제와 화폐경제의 비정상적인 불균형 상태가 어떻게 파괴적으로 해소되는지 보여주는 장르에 정신을 빼았겼다. 사람의 얼굴이 아닌 그들이 가진 욕망, 그것도 인간이라면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산에 대한 광적인 소유욕의 결말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결말은 아니었다. 모기지가 터지고 세상이 망할 것 같다가도 누군가는 더 큰 돈을 벌었고,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2008년 모기지 사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끝에 90년대, 2000년대 경제 위기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상식이 일천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1분기를 지나 2분기 실적은 3~40% 떨어지는 게 평균값이 될 것 같다. 가을, 겨울로 미뤄둔 일정들이 무사히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안전해진다고 해도 상대국이 언제 락다운을 풀지도 미지수다. 모기지가 터지고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기업과 개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경매 시장에 내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