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가능한 작은 목표
달성 가능한 작은 목표는 나를 더 뛰게 만든다. 1킬로미터 구간을 지날 때마다 손목에 '지잉-' 진동을 전해주는 이 시계 때문에 나는 더 속력을 내어 달리게 되었다. 조금만 더 달리면 1킬로 랩타임이 찍히는데, 중간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고 싶지 않다. 마저 1킬로 구간 기록을 찍고 싶은 마음은 조금이라도 기록을 좋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다.
그 결과 정말 기록이 단축되었다. 이 시계를 차기 전에, 핸드폰 앱을 통해 기록을 재던 때에는 내처 달리다가 너무 힘들다 싶을 때 좀 걸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민은 담당 학생을 관찰하는 선생님처럼 내 기록을 초단위로 세심하게 확인했다. 시계 액정 위에 순간순간 보이는 숫자들이 나를 좀 더 좀 더 쉬지 않고 달리게 내몬 것이다.
2016년 새해에는 일부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련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연하장을 띄웠고, 그 안에 나의 신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몇 자 적었다. 나 또한 이날까지 이토록 구체적으로 신년 계획을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번호를 매겨가며 적었고, 어디 빠진 부분이 없나 몇 번을 숙고했다.
지금까지 못다 이룬 목표들이 많았지만, 어찌 되었든 시도했던 부분에 있어 몇 가지 확실한 '방법론'을 얻게 되었다. 새해 계획을 적으면서 그것을 느꼈다. 다 쓴 목록을 읽어보니 굉장히 생활밀착형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1년 더 쌓였으니 그만큼 내가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해도도 더 높아졌다. 아직 날아오는 공을 쳐내지는 못했지만, 눈앞으로 돌진하는 공의 잔영은 흐릿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이 공이 직구인지 커브볼인지, 어떤 스윙을 더 연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더 쌓인 셈이다.
그렇게 이루지 못한 것들을 헤아리다 보니, 앞으로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목표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작년 한 해 내가 목표들을 달성해버리기보다, 그 목표 자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목표에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 가는 길에 대한 친밀도만 높아졌다. 이렇게 '만년 고시생'의 길로 접어들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완성은 27살에 달성되지 않는 목표이다. 2016년에도 2066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결과론적이지만 지난 2년간의 탈락 경험을 통해 성공하지 못한 방법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거꾸로 말하면 내가 한 해동안 '달성할 수 있는 작은 목표'의 틀이 좀 더 명확하게 눈에 들어온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십 년 계속될 인생 경로 가운데 27살의 내가 이루어야 할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작은 목표'들을 내 손으로 슥슥 적어나갈 정도는 되었다는 말이다. 어떤 목표든 그것이 손에 잡힐 듯 이미지로 형상화될 수 있을수록 다가설 확률이 높아진다. 몇 가지 목표를 적어가는 동안 나는 이미 미래를 어느 정도 살고 있는 셈이다.
가민 시계가 1킬로, 2킬로, 3킬로 내가 달린 길의 거리를 진동으로 알려줄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추진력이 새로 생기는 것을 느낀다. 그래 나는 또 1킬로를 달려내었구나, 이대로 조금만 더 힘내서 다음 1킬로를 달려보아야지.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되는가 싶다. 결국 일상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삶이 된다는 게 무서운 일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 사람은 쉽게 무중력의 상태가 되고 생활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