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숙 Apr 21. 2020

나는 '그냥 여성'이 좋다

디폴트의 여성과 눈을 맞추다

  철야를 하고 새벽 5시 낙산공원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묘한 이야기> 시즌 2 마지막 화를 봤다. 경사가 급한 길을 너덜너덜한 정신으로 걸으면서 '일레븐'의 마지막 한 방을 봤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엘'은 누구도 자신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벗어났다. 그대신 엘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구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원망하고 복수하는 대신 주인공이 되어 가족과 친구를 지켜냈다. 데모고르곤 개새끼들을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은 총이나 군대가 아닌 오직 엘의 각성 뿐이었다. (엘 코피 너무 많이 흘려서 안쓰럽더라..) 문을 닫기 위해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던 엘이 과거 연구소에서 학대받던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지만 잠깐이었다. 헛소리 한마디 없이 걸어들어가 코피를 터뜨리며 최대 출력을 내뿜었다.


 엘이 소리를 지르는 때는 진짜 힘을 써야 할 때 뿐이다. 성질 나는 대로 큰소리를 내며 주먹만 휘두르는 놈들과는 달랐다. 난 그런 게 좋더라. 자신의 세뇌해 온 남자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캡틴 마블이나, 조선 남자들에게 진보가 있으면 몇 푼 어치나 있겠냐고 되묻는 나혜석. '강한 여성'의 서사에 자연스럽게 끌리는 이유에 대해 몇 번인가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강함을 좋아한다. 초능력이든 재치있는 언변이든 받아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받아친다는 건 그 전의 어떤 텐션이 있었다는 뜻이고. 짧지 않은 시간, 적지 않은 횟수 쌓여온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장면에 희열을 느낀다. 그건 폭력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다. 원치 않는 것, 옳지 않은 것을 바꿀 수 있는 힘.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릴 수 있도록 판을 흔드는 힘이다.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보여주는 세상이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정 폭력과 성 상품화를 극적 요소로 부각시킨 극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영국 bbc 드라마가 원작이라고 한창 광고하던데.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서사를 빌려왔다고 해도 그것을 연출하고 그려내는 사람이 가진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기 마련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역시 아름답게 미화되지만 '죽어서도 스토킹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가해자의 시선, 범죄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이수정 교수의 해석이 떠올랐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가 태어난 나라의 일상이다.


 긴장이 계속되면 끊어지든 그에 맞먹는 반동이 일어나든 한가지다. 2020년 대한민국도 바뀌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게 코로나 사태를 헤쳐나가는 우리를 보고 독일 일간지는 '지나침의 예술'이라 평했다. 반발이 거세다는 건 그만큼 핵심을 찌르고 있다는 것이고, 보기 드문 수작인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와 마을 아지매들처럼 여성 연대의 힘은 조금씩 원망과 두려움 대신 자신과 누군가를 지켜내는 일에 투입되고 있다. 사실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오던 여성이 그렇게나 많았음에도, 남편보다 주목받는 일을 부끄럽거나 미안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엘이나 캡틴 마블의 마지막 한 방 같은 강력한 이미지를 더 많이 연출해내고 기억하는 것이다.  


https://youtu.be/emLJiJ9LFXc <디폴트 여성 100인의 인터뷰-탈코르셋 운동이 무해한 이유>


  31세 긴 머리에 거의 매일 화장을 하며, 남성과 결혼을 한 여성. 나는 언젠가 숏컷을 해보고 싶다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다. 짧은 머리를 하더라도 염색을 하고 모양을 매만져 최대한 '여성스러움'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왔다. 디폴트 여성 100인의 인터뷰를 보고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던 탈코르셋 운동의 가치를 처음 실감하게 됐다. 40여 분 짜리 영상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사실 '탈코르셋 한 여성'만 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가 얼마나 짧은지, 화장을 안하면 얼마나 안 했는지. 몸매는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럼에도 어딘가 여성스러운 매력은 남아 있는지. 정말 저렇게까지 해도 괜찮은지. 결국 사람이 아닌 '여성'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인터뷰이 숫자가 20명이 넘어가고 50명이 넘어가면서 나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짧은 머리나 편한 옷차림, 낮은 목소리가 아닌 눈을 보게 되었다. 나는 연인이 아닌 남성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낯설다. 어딘지 긴장되고, 화장이 묻은 건 아닌지 머리는 괜찮은지 자기 검열을 하게 되어 불편했다. 눈을 맞추고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닌 말과 행동, 그 사람이 가진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디폴트 값의 여성, 다르게 해석되거나 덧붙여져야 하는, 성적인 품평의 대상이 아닌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보니 눈 앞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탈코'는 남성만이 기본형이라는 환상을 깨뜨리는 데 효과적인 연출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건강을 위한 (나쁜) 습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