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왜, 어떻게보다 중요한 '누가'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 레이 달리오. 그가 쓴 '일과 삶'에 대한 원칙을 정리한 책이다. 헤지펀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두가지 정의를 참고했다. 첫째, 단기이익을 목적으로 국제시장에 투자하는 개인모집 투자신탁. 투자지역이나 투자대상 등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고수익을 노리지만 투자위험도 높은 투기성자본이다. 둘째,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실물자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목표 수익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펀드. 즉, 레이 달리오라는 이 사람은 돈이 되면 어떤 것에도 투자했고 그 결과 스스로의 성공한 인생에 대해 강의를 해보겠다는 내용이다.
돈을 많이 벌면 그게 성공한 인생인가를 되묻고 싶지 않다. 돈만 많이 벌었는지, 돈도 벌었는지는 본인이 하는 말만으론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700페이지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임에도 쉽게 리뷰를 시작할 수 있는 건 그의 성공한 투자 원칙이 나의 경제생활에 큰 깨달음을 주어서는 아니다. 이 책이 많이 팔리고, 나 자신도 혹했던 이유는 그의 원칙이 어떤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질문은 '누가'이다. 예전엔 어떻게나 왜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선 '누가' 그 일을 하는지와 '어떤 타이밍(언제)'에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더 자주한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은 싱거운 것이었다. 책의 서문에서 이 두꺼운 책은 크게 두가지. 삶의 원칙과 일의 원칙으로 나눠져 있으니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첫번째 챕터를 건너뛰어도 좋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레이 달리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레이 달리오는 1949년부터 미국의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12살 때 캐디로 일하면서 날고 기는 사업가 투자자들의 공을 주웠고, 그러면서 일자리도 주식에 대한 정보도 하나씩 주워담았다. 197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닉슨 대통령이 미국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합의를 파기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뉴스를 텔레비전으로 들었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기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통화 평가절하 사례 연구에 파묻혀 살았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주식시장을 어떻게 얼어붙게하는지 목격했다.
그가 곡물 가격의 등락을 예측해 양계농가의 사료값을 고정시키고, 맥도날드가 맥너겟을 출시할 수 있게 만든 에피소드는 서막에 불과했다. 달리오는 세계적인 거부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파산하고, 그 여파를 감당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가 개입하는 것을 봤다. 역사 공부에 진지해진 그는 수차례 그 자신의 판단 착오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틀리는 것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을 배웠다. 결국 '작은 위험으로 큰 성공'을 얻기 위한 원칙을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미래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주식은 도박인 동시에 미래를 내다보는 수정구슬이 있다면 100%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달리오는 오랜 투자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특정 시점에 가지고 있는 정보를 200% 활용하는 법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 환경의 변화를 예상하고 이에 따라 투자 전략을 바꾸는 대신, 우리는 발생하고 있는 변화를 찾아내어 변화하는 환경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시장에 우리의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p.72)
정말로 자신있는 부분에만 투자하고, 투자 대상을 잘 분산시키는 것이 성공한 투자자가 되는 비결이고, 제대로 된 균형점을 찾아 상관관계가 낮은 투자를 하면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확실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달리오는 이런 투자에 '킬러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식이 더이상 예언이 필요한 도박이 아닌 게 된다는 뜻이다.
리뷰를 쓰면서 책의 접어둔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들은 특별하지 않다. 당장 나를 주식 부자로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그보다 나는 그가 이 원칙을 떠들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서사에 끌렸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주식 부자가 될 수 있길 3% 정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에도 속았다. 그렇지만 레이 달리오라는 사람은 아주 재미있었다. 그가 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300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원칙들의 지루함을 어느 정도 참아넘길 수 있었다. 아쉽지만 700페이지 끝까지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