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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n 07. 2020

[9책] 숨결이 바람될 때

‘호흡 충동’을 느끼는 일상

 이틀 전 금요일 밤, 서핑 사이트에서 찾은 2명의 카풀러를 태우고 서울 시내를 빠져나왔다. 운전은 남편이, 조수석에 앉은 나는 당직인 저녁 뉴스 모니터링을 하는 중이었다. 며칠 동안 헤매고 있던 뉴스에 대해 타사에서 단독이 하나 나왔고, 공보관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문자만 하나 돌려주었다. 금요일 저녁 9시 30분. 나는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강원도 별장을 향해 날아가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더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뒷목이 뻣뻣해졌다. 그 와중에 당직 모니터 하나도 실수로 제대로 올리지 못해 한소리를 들었다. 아..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이 내 손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기자 명함을 들고 다니게 된 지 4년. 사건팀, 산업부를 거쳐 다시 법조 출입으로 사회부에 돌아오면서 평화롭던 내 인생에 굴곡이 생겼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는 것 투성이었다. 대충 속 편하게 넘겨보려 하지만, “내가 유능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마음에는 응어리 같은 게 조금씩 쌓여갔다.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모자람에 대한 갑갑함 때문에 눈을 감고 악을 삼켰다. 퇴사나 창업이 답이 아니다. 더 잘하면 그만이지. 좋은 기사를 쓰는 것만이 탈출구가 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돌파하지 않으면 언젠가 뒤돌아 치는 샌드백에 얼굴을 얻어맞게 된다.      


 마침 지난주에 읽었던 책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신경외과 의사가 쓴 것이었다. 30시간 넘게 선 채로 수술대 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는 10년 간의 수련의 생활의 끝을 눈앞에 두고 걸려 넘어졌다. 첫 10 몇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고역이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 아워>를 읽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타인을 위해 헌신적이었던 이교수만큼이나 그동안 자신의 삶에 욕심내지 못하고 살아온 젊은 의사에게 닥친 절망에 더 속이 쓰렸다. 그는 스스로 이야기했다. “내 인생의 정점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한평생 그가 해온 노력과 희생, 인내의 끝에 남은 것은 자신이 매일 마주해온 환자의 자리에 바보처럼 앉게 되는 일이었다.      


 자세나 운동보다 호흡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새벽 복싱으로 강제로 몸을 깨우는 것에 더 만족을 느끼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프리다이빙을 배우면서 정신과 육신을 지배하는 것은 곧 호흡이란 것을 익혀간다. 인간은 자신이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시간보다 2배 더 긴 시간 동안 숨을 쉬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산소가 필요하다고 착각하고 물위로 뛰쳐 올라오려 하는 것은 숨이 모자란다는 착각. 자신을 믿지 못하고 과도하게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걸 ‘호흡 충동’이라고 부른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이 충동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처럼 여러 가지 압박이 숨통을  조여올 때, 더 이상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젊은 의사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그것을 떠올린다. 삶이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호흡 충동’일까. 수심 10미터 아래로 내려온 나는 지금 있는 힘껏 팔을 내저어 물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독이며 분노의 감정을 추스르며 조금씩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할까.      


 두 번째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당부했던 것은. 처음 물 아래로 내려갔을 때 호흡충동이 올라올 때까지 참아보지 않으면, 그 다음 다이빙은 더 어려워진다고. 차라리 처음 하강할 때 머리를 비우고 가슴이 들썩일 때까지 참아보는 것이 그 다음 다이빙을 위해 좋다고 말이다. 새벽 5시에 눈을 뜨고, 땀 흘려 운동을 하고, 가능하면 하루 한편의 글을 쓰고자 책을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기억하려 애쓰는 것은 스스로의 호흡 충동을 느껴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 깊은 홀로 내려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매일 준비 호흡과 회복 호흡을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렇게 살다가 억울하게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면 어떻하냐고? 글쎄. 도리가 없지 않을까.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까지 이렇게 내가 마음먹은 대로 살아내고 나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에 더 많은 미련과, 후회의 감정이 상처가 되어 남는 때가 더 많았다. 언젠가 나의 숨결은 바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숨을 참을 수도, 더 길게 내뱉을 수도 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놓인 나의 의지와 열정, 꿈과 사랑의 삶에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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