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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n 02. 2020

[8책]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명강의도 질문으로 끝나더라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짧은 서평을 3번 썼다. 첫번째는 저자의 서론이 너무 길어 차라리 하고싶은 말부터 질렀으면 좋겠다는 것. 두번째는 그렇게 재촉했던 나 자신을 후회하는 것. 마지막은 저자가 이 책을 팔아 먹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르겠단 이야기를 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상, 존재론, 영혼의 존재 여부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전고로 가득찬 첫 200페이지는 심각하게 지루하다. 이런 이야기를 기대라고 책을 고른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200페이지는 저자 본인의 생각이 여과없이 전개된다. 말로 이뤄지는 강의였다면 그대로 흘러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자로 적히고 앞 뒤의 맥락이 중요한 한권의 책으로서 셀리 케이건 교수의 이야기는 도무지 와닿지가 않았다. 앞선 전고들이 무엇을 위한 포석이었는지 알 수 없을만큼 제멋대로 결론짓고 다음 스탭으로 나아가는 주장들이었다.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나 복제 기술과 같이 단번에 예외적인 사례가 떠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고 내린 신중한 결론이라고 한다. 600페이지나 썼으면 그런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줄 줄 알았는데 예일대 명강의도 질문으로 끝나더라. 아니 그래서 질문으로 끝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하버드에서 유명했던 강의라고 들었다. 그 수없도 결국 정의란 무엇인지를 학생 개개인에게 질문하는 식으로 끝나는지 모르겠다. 철학적 질문에 대한 강의는 본래 의도가 그런 것일까.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것. 애초에 하나의 명확한 답이 없고, 수많은 종류의 답이 있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지는 개개인의 선택에 불과한 것. 그런 본질적인 질문에는 애초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대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2주 동안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노화였다. 그리고 죽음보다 노화한 채 살아남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새벽 5시 40분, 눈알이 뻐근한 채로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기로 한 나의 의지는 늙은 몸이 되면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나에게 노화는 장애다. 그리고 그 심각한 장애로 인해 서서히 죽어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죽어가고, 원하는 것을 도전하고 이루어내고자 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죽는다. 그런 미래를 떠올리면 겁이 나서 애초에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20대의 쌩쌩 돌아가는 머리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활력있는 육체를 가진 예일대 학생들이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하나에 얼마나 많은 자기성찰의 기회를 얻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강의가 유명해진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60대의 나는, 아니 좀 더 나아가 80대의 나는 승마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25m 수영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한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오후에는 친구들을 만나 폴로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여러 사업장을 돌보고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일을 주면서 지금처럼 일상을 스쳐지나간 생각과 감정들을 글과 음악과 대화로 표현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질문은 그 끝에 다다르기 전의 삶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의 끝에 대한 생각이고,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하는 질문은 결국 시작과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1년 뒤에 죽는다고 해보자. 그리고 10년 뒤에 죽는다고도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근사치 50년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달라지는 이유에 집중해보자. 그럼 오늘 하루가 어떤 날이었으면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수업에 어느 날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학생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 학생에게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 죽음을 앞둔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이었다. 과연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여행을 떠나고,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곧 죽음을 앞둔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 그리고 내 삶의 목표가 과연 그것에 있을까. 우리는 1년이든 50년이든 시한부 인생이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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