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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Dec 08. 2020

마흔에 은퇴해서 뭐할껀데

스콧 리킨스, <파이어족이 온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조기 은퇴'를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즐겨 듣는 투자 상담 유튜브 채널엔 크게 두 종류의 사연이 도착한다. 50~60대 이미 축적해 놓은 자산이 어느 정도 있는데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이 없어 대출이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고, 반대로 아직 젊은 나이에 근로소득은 높지만 종잣돈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 경우다. 먼저의 경우에는 청약을 기대하거나 조금이라도 월 수익이 발생하는 투자를 하는 게 낫고, 후자의 경우에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다달이 이자비용을 감당하는 부동산을 구입하는 식의 공격적인 투자를 제안한다. 나이와 자산규모에 따라 최선의 선택지는 달라진다.


 40에 은퇴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마 근로소득이 정점을 지날 때까지 직장을 다니며 가능한 가치가 높은 부동산을 소유하기 위해 대출을 활용하고, 적은 확률이지만 청약 당첨의 행운을 노리며 가산점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이어갈 것이다. 로또 만큼의 확률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올인하면 '로열 크라운'인 서울 강남 지역의 대단지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10년 20년에 걸쳐 조금씩 집평수를 늘려가며 60대 중후반에 은퇴, 다달이 120만원 안팎의 연금을 받으며 그동안 축적해둔 자산을 조금씩 빼어 쓰며 노후를 보낼 것이다. 


 나쁘지 않다. 어느 정도 눈에 그려지고, 주위의 많은 선배들이 걷고 있는 길이다. 하지만 나는 서울의 집보다 강원도의 별장을 먼저 샀고, 아파트가 아닌 노후 주택을 고쳐 살고 있으며, 아직까지 청약 당첨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몇년에 걸친 몇 가지 중요한 선택들을 하나의 선으로 그어봤을 때 나는 은퇴 후의 삶을 조금 다르게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개념이 '조기 은퇴' 파이어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파이어족이 온다> 의 저자이자 주인공 스콧 리킨스는 바닷가 호화 주택에 살며 요트클럽 회원권을 가지고 있고, 아내는 BMW와 와인을 즐기며 연간 수억원을 벌어들이지만, 매달 생활비만 천만원이 넘게 드는 삶을 살고 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조건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젊은 시간을 갈아 넣어 돈을 벌고, 그 돈을 갈아 넣어 마음껏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젊음은 그보다도 더 짧다는 사실을 어느날 깨닫게 된다. 어느 아침과 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던 그는 파이어족에 대해 소개하는 한 편의 팟캐스트를 듣고 나서 자신이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간절히 찾던 '백만 불짜리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10가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언제' 누리고 싶은가"


 흔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버킷리스트'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죽기 전 보다는 '늙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조기 은퇴를 꿈꾸는 이유는 흔히 '은퇴 후'에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제적인 안정감과 정서적인 만족감, 자아 성취의 욕구 충족이라는 목표가 사실 60이나 70이 아닌 좀 더 이른 나이에 이뤄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사실 나이가 들면 '어떻게든' 되는 일이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철이 드는 게 아니듯,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는 미래에 내 전부를 걸어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한 발 앞서 마중을 나가보고 싶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다퉈도 결국 저 사람은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때, 주말 내내 물에 들어가 놀아도 하룻밤이면 피로가 풀릴 때, 사랑하는 사람과 24시간 붙어 있어도 싸우지 않을 때, 아직 세상에 나를 알리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순수한 욕구가 남아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세상이 주목하는 이 시대의 문법으로 쉽게 풀어낼 수 있을 때, 결국 나 자신이 아직 젊다고 느껴지는 때에 은퇴 후의 삶을 누리고 싶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직접 내린 커피와 느긋한 점심 식사, 그리고 생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 나머지 시간은 나 자신의 브랜드로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 일년에 두 달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새로 흥미가 생기는 일을 반가이 여기며 마음을 쏟는 그런 젊은 날을 보내고 싶다. 사람들은 한창 일할 나이인 마흔에 은퇴해서 뭐할꺼냐고 묻겠지만, 그때가 한창 놀기 좋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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