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번째 달리기
한 달 반 동안 같은 코스를 달리는데 익숙해진 나에게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다. 바로 천천히 속도를 높여서 정점에 이르는 '가속주'.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페이스를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는 훈련 중 하나라고 한다. 평소보다 천천히 시작해서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서 속도를 끌어올리는 달리기. 평소 마지막까지 평균 속도를 유지하는 것부터 힘에 부쳤지만, 새로운 퀘스트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술을 잔뜩 먹은 다음 날 아침 달리기를 하면서 속이 매스꺼움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두 번째로 달리기 중에 정말 토가 쏠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체 5.6킬로 구간 중 도로로 이동하는 구간을 뺀 가운데 3킬로를 가속주로 달리려는데, 평소와 같은 속도로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속도는 계속 올려야겠고, 그에 따라 팔과 다리 호흡은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달리는 기차에 가속을 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석탄을 던져 넣는 것처럼 새로운 공기를 크게 빨아들이며 뛰었다. 팔과 다리의 감각보다 호흡이 문제였다. 아니 코와 입, 가슴까지는 괜찮았다. 위장부터 밀려 올라오는 메스꺼운 기분이 있었다.
결국 몸이 견지디 못했던 것이다. 마음은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는데 몸은 멈춰 설 것을 요구했다. 결국 기록계를 멈추고 코스 한가운데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허리를 펴고 있을 수도 없어 두 무릎을 잡은 채로 흐헉흐헉 호흡을 고르고 서 있었다. 아직 나의 몸은, 이 정도의 속도를 유지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걸 무시하고 기록계의 숫자만 보고 뛰었다가 달리기를 중간에 멈추게 되었다. 항상 제 1 원칙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린다-인데도 말이다.
재밌게 봤던 웹툰 <빵점 동맹>의 여주인공은 굉장히 성실한 수재이다. 그녀가 지향하는 인생의 그래프는 무수히 많은 작은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가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일평생 성취할 수 있는 일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을 아주 조금씩 이루어 나가며 그 성취감을 가능한 많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토할 때까지' 무리하게 속도를 올려 중간에 지쳐 버리거나,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지경이 되는 상황은 피하는 게 현명하다. 안정적으로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을 일평생 꾸준히 오르며 '만족'만을 얻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몸이 견디지 못하는 수준으로 채근을 하면 갑자기 멈추어 서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토할 정도로 뛰어야 했던 그 속도도 어느샌가 편안하게 뛸 수 있는 때가 온다. 조금씩 몸이 익숙해질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가능하다. 몸이 버텨내지 못할 한계에 몸을 부딪힐 것인가. 무리 없이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성취할 것인가.
첫 번째 가속주 도전이 오랜만에 내 몸의 한계를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다양한 목표 성취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