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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an 23. 2016

무릎 대신 메티스

39번째 달리기

http://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7&dirId=70106&docId=196147647&qb=7KGw6rmFIOustOumjg==&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


약간의 통증을 무시하고 달리던 것이 무릎 주변 근육에 무리를 주었다.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했지만 결국 무릎에 찌릿거림이 심해졌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딱딱한 아스팔트 시멘트 돌길을 조깅 코스로 삼은 사람들. 부적절한 준비운동, 한쪽 방향으로 편향된 잘못된 달리기 방법이 원인이었다.


@ 네이버과지식인 검색 결과



내 몸에 ITband란 곳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내가 욱신거림을 느끼는 그 부위가 바로 그런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함께 제시된 스트레칭 방법대로 몇 분단 무릎과 허벅지 근육을 풀어주니 찌릿거림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대응방법.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항상 작은 문제를 키운다.


당분간은 달리기를 쉬기로 했다. 통증을 무시할수록 회복 기간을 늘어난다는 것을 나이가 한 살 먹어가면서 체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조깅 대신 수영장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아직 허벅지와 무릎, 종아리 근육이 균형 있게 발달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했다. 결국 하루 종일 저릿 거리는 한쪽 무릎을 모시듯이 하며 걸어 다녔다. 운동은 발란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면 이렇게 탈이 난다.


하지만 무릎 대신 '메티스(Metis)'를 얻었다.



@ 며칠째 한파


오늘도 여전히 공기는 차가웠고, 달리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은 찌릿거렸지만 몸을 덥히기 위해서 더 열심히 달렸다. 그렇게 얼마간 속도를 올리다 보니 또다시 그게 왔다. '게으른 생각의 시간'.


팔을 열심히 움직이고, 다리를 부지런히 교차하는 순간순간 생각이 끼어들었다. 몸은 자동화되고, 쏟아지는  물아래 놓인 물레방아처럼 기억의 조각들이 대신 돌았다. 이번 주 책모임 책인 <소셜 애니멀>의 주인공이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통해 그리스 영웅들의 용기, 긍지를 배우게 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몇 시간 뒤면 어느 카페에서 면접을 보게 될 방송국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각났다. 태아의 뇌세포는 1분에 35만 개씩 생성된다. 빡빡할 오늘의 일정과 책의 내용들이 교차해서 머릿속을 흘러갔다.


그 생각들 사이에 교차점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 된 뇌에는 이번 주 내내 붙잡고 있던 책과 새로 시작한 스터디에 대한 걱정, 방송국 아르바이트 면접에 대한 긴장이 수많은 전기 자극으로 이리저리 이동했다. 무수한 정보 사이에 새로운 연관성이 보이고, 암시나 강한 예감처럼 눈앞에 일어나지 않은 시간의 풍경이 떠올랐다. 여전히 나의 속도, 내 호흡의 리듬을 따르면서 순식간에 많은 정보가 정리되었다.


인식과 무의식의 기묘한 조화. 그 결과로 습득된 완전한 지혜. 언젠가 생각하고 관찰했던 것들이 새로운 조합으로 정리되고 사물의 본질을 통찰한다. 복잡하고 파편적인 정보들이 명쾌하게 단순화되어 문제 앞에 나가는 동시에 그것을 풀어버리는 능력. 달리는 동안 몇 번인가 느꼈던 이런 순간들을 일컫는 말이 있었다. 그게 바로 '메티스(Mētis)'이다.


메티스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려(思慮)의 인격화. 제우스의 최초의 아내로, 신인 중에서 가장 현명했다. 제우스는 우라노스와 게의 충고로 그에게서 자기보다 권력 있는 자식이 생길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속여 삼킨 결과로, 그는 항상 제우스와 함께 있으면서 제우스에게 충고를 전해준다.


나는 이 경험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게으른 생각의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훈련되는 어떤 능력이라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후 늦은 시간 <소셜 애니멀> 이란 책 속에서 나는 이 단어를 만났다. 내 무릎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어느 작은 근육이 'ITband'란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나는 나의 생각 근육 중 일부분을 '메티스'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걸 새롭게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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