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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05. 2022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아비투스> 서평

문득 떠올랐던 몇 가지 순간들

     

1. ‘반려’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했을 때 이를 지적했던 한 법조인

2. 명절마다 미국에 있는 딸과 사위, 손주를 모두 불러 모으던 자산가

- 그에게 학창 시절 용돈으로 고급 시계를 선물했던 손자

3. 몇 억대, 몇 십 억대 자산 규모로 선 볼 상대를 평가했던 대학 동기

4. 집에서 쉬는 시간에 부모님과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답했던 타사 동기

5.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매년 수 천 만원을 쓰는 기업 회장

6. 자산이 상당하지만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선배     


 그동안 만났던 소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은 정확한 언어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를 이은 가족의 전통 문화를 식탁에서 구현하는데 진심이었다. 자산의 규모가 사람의 무엇을 결정짓는지 현실적으로 따져보고, 온 가족이 여가 시간에 드라마나 뉴스 대신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게 일상이었다. 나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그 당시에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각자 충분한 합리성에 근거한 선택들이었다.     


 새 돈과 오래된 돈의 구분 짓기     


 우리는 엄청난 자본의 축적을 꿈꾼다.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그것이 오래되었을 것, 적어도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다.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자본 모든 카테고리에서 그렇다.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내가 당연히 누려야할 것을 가졌다는 만족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반대로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언제든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 익숙하지 않은 옷을 빌려 입었다는 초조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끊임없이 자신이 그 자본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자본은 자유로 완성된다. 이 책은 “당신의 인격적 발달을 위해 재정적 가능성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돈과 인맥,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은 단순히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효용만 있지 않다. 원하는 것을 더 가까이 하고, 원치 않는 것에서 더 멀어질 수 있는 자유를 자본과 맞바꾸었을 때 가장 크고 만족스러운 효용을 느낀다. 세계의 어떤 사람과 어울릴 수 있고, 원하면 세상의 어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대통령, 월드스타, 세계적 기업가 어떤 사람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문화 코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다신 만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      


“법관이 된 지 19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가발은 여전히 새것이다. 

 부모로부터 유서 깊은 가발이나 변호사직을 물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통, 품격, 연륜을 보여주는 가발을 갖고 싶다.”          


 무언가를 물려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박탈감을 잘 설명해준다. 상속의 주체는 부모일 수도 있고, 가족이 아닌 멘토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다. 씁쓸하지만 먼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제대로 출발선에 서야 한다. 상당한 자산을 물려받은 이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한 왕조를 세워나가는 노력 자체가 자신의 ‘기여분’이라고 생각한다. 몇 대에 걸쳐 내려온 자본에 자기 자신도 제대로 한몫을 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부를 쌓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차원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모든 종류의 자본이 대를 이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저절로 상속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물

려줄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나의 인생이 끝나면 무엇이 남을까  
  생각해보니 한 번도 무언가를 남겨보려 욕심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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