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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05. 2022

어떤 자유든 1천 명의 팬이 필요하다

<트렌드코리아 2022> 서평

<트렌드코리아 2022>    

 

1. 스시 오마카세 예약을 위해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선배

2. 2010년대 미국에서 비트코인을 알았지만 투자하지 않았던 법조인

3. 올해 전국 100대 명산을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운 친구

4. 평일 낮 강릉 시내의 공유 오피스에 가득 차 있던 프리랜서들

5. 수도권 대기업에 다니면서 주말이면 강원도에서 서핑을 하는 직장인

6. 재택근무 중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서비스 창업을 준비 중인 지인     


  이 책을 읽으면서 NFT라는 걸 만들어 보았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따라 했는데, 아이패드로 그린 선인장이 클릭 몇 번으로 ‘팔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이 됐다. 판매를 시작하기 위한 수수료도 코인으로 결제를 해야 했다. 선인장 그림 하나를 팔기 위해 업비트 어플을 깔고 계좌로 돈을 이체 시켰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과연 이게 팔릴까 싶지만, 지금 당장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것만으로 내 시간을 쓰기에 충분했다.      


 나노 분자처럼 모든 개인이 돈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냐고 묻겠지만, ‘돌진’하는 방식과 실제로 돌진하는 이들의 숫자를 따진다면 전에 없던 변화다. 정원이 40명인 오프라인 부동산 강좌에 2천여 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광클했지만 몇 백번 대 대기표를 받고 나니 허탈하기도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읽을 수 있는 책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일까.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2009년의 키워드는 ‘스펙을 높여라’였다고 한다. 트렌드코리아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잠깐 관심을 가졌지만, 10여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그 사이 세상은 변했다. 스펙은 더 이상 계급상승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2009년에도 개인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그것은 좋은 기업이나 조직에 속하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모든 개인 자신이 한 기업이나 경제 조직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잉크’로 타인과 나를 구분 짓고자 하는 욕망.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서비스와 차별화하기 위한 마케킹 전략을 짜는 것과 같다. 그저 튀기 위해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트렌드의 변화를 발빠르게 이해하거나 그 자신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이제 개인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위치를 지키고, 한단계 높이 끌어 올리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되었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좀 더 낫거나 경쟁 상품과는 다른 상품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상품을 만났을 때 좋아요를 누르고 지갑을 연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은 스토리에 끌린다. 누구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석하지만 착각이다. 타인을 끌어당기는 스토리는 사실 내러티브의 조각이다. 수많은 이야기의 모음집이 아닌 ‘발화의 주체가 창의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특정한 관점이나 가치관이자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 자체이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화양연화>에서 <중경삼림>으로 이어지는 ‘시선’ 자체를 사랑한다. 그가 무엇을 찍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찍어냈는지가 중요하다.       


 이제는 모두가 자신만의 화풍을 개발해야 한다. 그만의 스타일, 시선, 이야기의 어느 부분부터 시작할지 고르는 안목과 사소한 말투 하나. 물건을 담는 그릇, 그 물건 위로 내리쬐는 조명의 각도와 밝기, 어떤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자체의 특별함. 무엇이든 타인의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세계관을 만들어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경제적 자본, 사회적 자본, 어떤 종류의 자유든 적어도 1천 명의 팬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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