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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l 01. 2022

자가격리 중에 읽기 좋은 책

김영하  <작별인사>

  2022년 상반기에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가상의 삶에 대해 상상하며 흘러보낼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월화수목금, 6번의 약속을 잡았던 그주 주말 나에게 코로나가 찾아왔다. 지난 2년 반 동안 스스로 '슈퍼면역'인 줄 알았지만 운이 좋았던 것 뿐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부어오르는 목 안쪽의 통증에 하루아침에 꼼짝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나는 나의 집에 갇히게 되었다. 월화수목금토일, 24시간 x 7 = 168시간 동안이나 말이다.


확진 첫째날은 부어오르는 목때문에 겁에 질려 있었다. 둘째날로 넘어가는 밤 사이 면도칼을 삼킨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고, 나는 일주일이란 시간을 온전히 바이러스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많은 시간을 집 안에서 회복에 집중하며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몸이 회복에 집중하는 동안 정신이 집중할 곳이 필요했다.


김영하의 <작별인사>, 오건영의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그리고 피터 린치의 <월가의 영웅들>


 거슬리는 것 없이 마음 놓고 빠져들만한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비소설보다 소설이 더 그런 것 같다. 개인의 취향과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에 따라 다르기에 누군가의 추천을 따르기 어렵다. 지금처럼 몸과 마음이 함께 위축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여행의 이유>를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오전 11시 전에 결제를 하면 저녁 8시에 도착한다는 문구에 끌리기도 했다.


그러나 책은 그 다음날 오후에 도착했다. 확진 3일째 격리된 지 50시간쯤 되었을 때 받아든 세권의 책은 구호물자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몇 시간은 한 장씩 넘겨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제목도 <작별인사> 어떤 내용이 쓰여 있어도 실망하지 않을 것 같은 무던히 소설책스러운 제목이었다.


솔직히 SF 장르라는 것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실감나는 현실의 인간에 더 큰 흥미를 느끼는 내게 너무 단조로운 인물들이 나오진 않을까 싶었다. 그런 점은 크게 거슬리는 단어나 문장, 흐름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라인 덕분에 책장을 넘길 수록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먼 미래가 배경이기 때문에 내가 만나본 그 누구를 떠올려도 잘 들어맞을 수 없다는 점이, 인간과 삶, 시간과 이야기의 원형에 대한 심상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오랜만에 우주에 떠다니는 존재란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오래 전 인도 시골 마을을 여행하며 느꼈던 온전한 홀로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철학적이 되거나 과하게 감상적이지 않게, 그저 육체와 정신과 마음과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었더라, 스스로가 도달했던 결론들을 현재의 시점에도 들어맞게 재조정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self-isolation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가둬두기 위해 여행했던 것 같다. 익숙하고 편안한 가족과 친구가 아닌 바깥 세상에 스스로를 묶어두고 현실을 경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랬다. 일부러 위험한 곳에 가고, 일부러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곳에 가고, 의식적으로 익숙한 곳과의 연락을 줄이고자 했다. 그렇게 한 뒤에야 집중할 수 있는 관념이 있다. 그건 그 자체로는 나에게 어떤 목적도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하지만. 그 목적과 방향성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존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성경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의 개별성보다 인간과 삶과 이야기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러면 오히려 자아가 더 단단해진다. 개성은 변할 수 있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 더 짙어지거나 흐릿해지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점에 집중할 수록 개성은 저절로 확고하게 드러난다.  


열감에 취해 밤낮으로 읽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꿈속에서도, 아침에 눈을 뜬 첫 순간에도 여운을 남겼다. 작가가 아주 대중적이라 안 봐도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이도 있겠지만, 무한히 주어진 자유 시간 속에 물끄러미 나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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