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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Feb 23. 2016

EBS 엄마TV 2부 <우리 아이 진짜 성 토크>

야동 대신 부모에게 배울 수 있도록

@ 노래방 엄마의 우리 아이 진짜 성 토크



"아들, 이리 좀 와봐봐.

 엄마가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 좀 해주면 안되?"


 눈치가 빤한 중학생 아들은 대꾸도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간다. 카메라 앞에서 다짜고짜 '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는 엄마라니. 나였다면 방문이 아니라 벽장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시도된 엄마와 아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소통 공간, 엄마 tv>


 '이혼전문변호사 엄마'에 이어 '노래방 엄마'가 등장했다. 하루종일 아들 또래뻘 되는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노래방에서 엄마는 늘 몇 개의 방을 순찰한다. 어린 학생 둘이 들어갔는데,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엄마 출동이다. "요즘엔 중학생들도 모텔 다 가요"  한 고등학생 커플로부터 충격 발언을 들은 노래방 엄마는 급기야 뜬금없이 아들을 불러 세워 '성교육'이란 걸 시도하게 된 것이었다.


 '엄마들끼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1인 방송 포맷으로 여러 엄마들의 '솔직 토크'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엄마 TV의 기획 의도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 그러나 '수술은 성공했으나 환자는 사망했'으니 정작 아이들의 성 이야기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엄마들은 여전히 '설마.. 우리 아들이 사고치지는 않을까?' 정도의 걱정만 왁자지껄 나누고 있다.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좋아. 때 되면 다 알아서 하는 걸”

“막상 불러다 앉혀도 말이 안 나오는데 어떡해”


 프로그램에 등장한 엄마들은 '아이들의 성'에 대해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배려를 가장한 '무관심 혹은 무지'를 정답으로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성'에 대한 이해가 '성행위'에 관한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때 되면 '제대로' 다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최근 10년간 대한민국에서 강간을 비롯한 성폭력범죄는 10년새 2배가 늘었다. 신고율은 10% 미만, 그 중에서도 기소율이 현저히 낮다고 한다. 모두가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 성나라당에서 색누리당까지

 중학생들이 모텔을 출입하는 이 나라에서 '성' 은 더이상 적당히 모른 척 지나가면, 알아서 잘 하게 되는, 그렇고 그런 문제일 수 없다. 성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배우지 못하고 성장한 아이들이 아무리 좋은 대학에 들어가, 출세를 한다고 한들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한다는 어른들의 면면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지 않는가. '성'나라당에서 '색누리당'까지




삶(生)에 마음(心)을 더하면
'성(性)'이 된다.


 '올바른 성'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곧 삶 전체를 아우르는 가치관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성에 대해 자유롭고, 주체적이며,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은 인생에 있어서도 같은 태도를 지닐 수 있다. 자신의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인성교육'이 완성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이질적인 성,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방법 역시 자연스레 몸에 익힐 수 있다. 이는 장래를 함께할 배우자 관계에 있어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앞서 '노래방 엄마'가 아들의 마음을 여는데 실패했듯, 먼저 '일상에 대한 소통' 없이 가정 내의 성교육은 어렵다. 아이들의 성문화가 활짝 열린 것에 비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소통 창구는 훨씬 더 좁아졌기 때문이다. 평소 엄마, 아빠와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친분이 쌓여 있어야 어떤 이야기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다행인 것은 청소년기 아이들이 성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일단 성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것이다. '성'은 어렵고 민감한 주제이지만, 동시에 부모 자식간의 관계를 눈에 띄게 발전시킬 더없이 좋은 찬스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비정상회담-관심과 무관심 편>에선 '네덜란드의 성교육'이 소개되었다. 성매매와 마약이 합법이지만, 네덜란드는 첫 성관계 연령이 유럽에서 단연 높으며 데이트강간, 청소년 출산율, 낙태율도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러한 성과를 거두게 된 중심에는 '네덜란드의 성교육'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의 성교육 정책과 세부 원칙을 하나씩 살펴보니 충분히 납득이 갔다. 이 기회에 한번 익혀두도록 하자. 성인인 내게도 '성교육'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RAP 정책


 : 청소년은 섹스를 할 권리를 가지며(Right), 사람들은 이를 용인해야 하고(Accept), 청소년들이 참여하고(Participate) 발언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정책.


 '성'과 '관계' 교육. 성행위로 한정되기 쉬운 성교육의 개념을 관계로까지 확장시켜 학교에서는 물론 부모와 자녀가 성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제공.


가.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성교육.

  4세부터 성교육이 시작되어 성에 관심을 두기 전에 성교육을 실시하고, 성을 일상적인 대화주제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나. 토론 방식으로 제도화된 성교육.

 초등학교 4학년부터 제도화된 필수 성교육이 시작되며 가르치는 성교육으로는 성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강의식이 아닌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다. ‘낭만적’이기보다 ‘일상적’인 성(性).

 성을 탐닉할 대상이나 낭만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일상 생활의 평범한 한 부분으로 여기도록 한다.


라.   ‘자기 결정권’이 핵심.

 토론식 교육을 통해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간에 성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   


 물론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와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내에서 개방적으로 성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우리가 점잖은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은 아니다. 보다 직접적인 문제의 원인을 꼽으라면 1990년대 IMF 이후 전통적인 가정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가정의 경제 위기는 구성원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생활하는 시간 자체를 잡아먹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에 눈을 뜨는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지도해줄 어른이 가정에 부재한 시간이 훨씬 많아졌던 것이다. 사실 '성'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가정 내의 '인성 교육' 자체가 이루어질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한 숨 돌리고 나니 아이들은 중,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어 부모들은 자신과 같은 고생을 시키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집에서 학원으로 쫓아낼 수 밖에 없었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구조조정, 비정규직, 정리해고라는 단어들이 이때부터 생겨났고, 생계 비용에 대비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맞벌이를 해야 했고, 많은 부모들이 이혼, 별거로 떨어져 살거나, 조부모에게 아이들을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교육 불가능의 시대>


 그 결과 아이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살아 있는 세계'와 교섭할 수 없게 되었다. 학원과 텔레비전, 인터넷을 비롯한 자폐적이고 파괴적인 놀음의 과정 속에서 '욕구와 충동의 덩어리' 자라났다. 그 아이들이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각종 미디어와 스마트폰 콘텐츠는 현란하게 발달한다. 부모님과의 대화보다 카톡 대화창이 익숙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원하면 언제든지 '어른의 성 문화'를 탐닉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생의 3%가 성관계 경험이 있고, 중학생이 모텔을 출입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는 '성'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남사스러워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수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야동 대신 부모에게서 '성'을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 걷잡을수 없이 벌어져 버린 부모-자식 세대간의 성 인식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여기서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머 어머' 부끄러워하는 부모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답'이라는 부모도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아이들의 성에 대해 부모가 먼저 놀라거나 꾸짖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소통이 없었던 관계에서 한마디 말도 쉽게 아이들의 입을 굳게 닫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느날 아침 거실에 불러놓고 하는 이야기는 '성교육'이 아닌 '남는 게 없는 훈계'다. 드라마를 보던 중 어떤 장면에 대해 생각을 묻거나, 그들이 즐겨 보는 웹툰에 관심을 가져본다는 식으로 아이들에겐 언제나 '자연스럽게' 그들의 영역에 스며드는 게 중요하다. 이로서 '성행위'와 '삶'을 따로따로 설명하려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아이들의 성은 곧 그들의 인생이자 미래 자체란 사실을 염두하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올바른 성 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토론식으로, 일상적으로'  부모 자신의 성과 인생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왔는지. 아이들은 성 역할과 성 담론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부모와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부모 자식이든 간에 거실에 앉아 '섹스토크'가 가능해진다면, 그전에 이미 수많은 불통의 문제들은 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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