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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Mar 05. 2016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2. 무량수전 앞마당의 적요로움


 만약에 감은사 답사기를 내 맘대로 쓰는 것을 편집자가 조건 없이 허락해 준다면 나는 내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쓰고 싶다.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가운데


 <문화유산 답사기> 1권 표지는 '감은사지 석탑'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유적지를 돌아봤을 유홍준 씨가 말을 잇지 못하는 풍경이라니. 4년 전 이 책에서 이 이야기를 읽은 그 날 저녁, 경주로 내려가는 마지막 심야버스표를 끊었다. 이 곳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유적에 대한 어떤 상세한 설명 묘사보다 내 마음을 확실하게 움직인 문장이었다. 새벽 4시에 경주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역 근처 식당에서 아침 백반을 먹었다. 집 대문을 나선지 14시간 만에 감은사지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고대 석기시대 유물 같은 석탑의 크기에 놀랐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감은사 절터에 옛 모습을 눈 앞에 그려보는 것만으로 이 먼길 찾아온 보람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무량수전 앞마당의 풍경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오랫동안 이 문장 끝에 무엇이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들은 어딘지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걸어서 겨우 15분 정도 올라간 산 중턱에서 과연 안개가 자욱한 선경이 보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 배흘림기둥이라는 것이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만한 감식안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곳까지 왔는데, 실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안양루를 지나면서도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 소백산맥이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한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충분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소백산맥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배흘림기둥 또한 찬찬히 살펴봄직했다. 멀리서 새가 높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따뜻한 날씨에 무량수전 앞마당엔 햇빛이 가득했다. 사실 그곳 기둥에 기대서서는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지만, 절에 올라서는 돌계단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넣어두고 꺼내보게 될 것 같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했고, 안양루의 좁은 계단으로 올라선 이곳은 세상에서 한 걸음 깊이 들어와 있는 공간 같았다. 유홍준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의 산들은 높은 게 아니라 깊다-'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어느 깊은 곳에 나 혼자 들어와 조용히 햇빛을 받고 있다. 정오의 따가운 햇살은 제멋대로 찾아온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다. 지난 1,500년 동안 홀로 이 곳을 찾은 이가 얼마나 많을까. 이 곳에 서서 소백산 자락을 내려다보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가 밝아졌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 무량수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안양루와 소백산맥



@ 무량수전 돌계단에 앉아 보이는 풍경


@ 무량수전 왼쪽 마당에서 둘러본 풍경

 한참 해바라기를 하고 나서 다시 무량수전으로 눈을 돌렸다. 배흘림기둥이라 하는 것을 좀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다. 햇빛이 따사롭게 비춘 기둥은 생각보다 훨씬 밝은 색이었다. 나뭇결이 뾰족뾰족 잔디처럼 위를 향해 올라와 있었다. 죽은 나무이지만 햇볕을 따라 아직도 뻗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둥 가운데 갈라진 곳도 군데군데 보이고, 색은 하나도 입혀지지 않았지만 보기 좋았다. 기둥 양식과 사찰 건물의 배치 같은 건 잘 모르겠다. 그래서 기둥 하나하나의 색깔과 무늬, 높이 같은 것들만 한참 구경했는데 책이나 사진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더 재미있었다.



 '갠지스 강'을 검색하면 강 쪽에서 강변을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강변에서 강을 내다본 사진은 그 자체로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는 강변에 죽 늘어선 화려한 건물들, 그리고 강가에 나와 빨래를 하고 몸을 씻는 사람들의 풍경을 담은 것이 그곳의 풍경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강변에서 강을 내다본 풍경이 더 멋지다. 강 건너편에 모래가 가득한 둑이 있어서 배로 그곳에 건너가면 사막에 내린 것 같은 풍경이 새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이곳이 세계 어느 곳의 강가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밋밋한 풍경에 색다른 건축물이나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석사 역시 무량수전을 바라다보는 풍경보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경치가 더 마음을 잡아끌었지만, 카메라로 찍었을 때 그것이 더 잘 나오는 것은 아니어서 아쉬웠다.


@ 무량수전은 살아 있는 절이었다

 으레 '유적지는 출입금지'라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무량수전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건물 앞에 신발이 몇 켤레 놓여 있었다. '스님용', '신도용' 올라오면서 봤던 안내 표지판과 같은 꾸밈없는 글씨체로 적힌 나무 도막이 세워져 있었다. 신기한 것은 절 안에서 '카톡' '카톡' 하는 알림 음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안에 누군가 있기는 있나 보다. 절 근처를 뱅뱅 돌기만 하다가 결국 마음먹고 문고리를 잡았다. 삐그덕 삐그덕 조금 뻑뻑하게 문이 열렸다. 그 안은 언젠가 가본 적 있는 사찰들의 경내와 같은 모습이었다. 왼쪽 한 편에 커다란 불상이 앉아 있고, 사람들이 방석을 끌어다 앉아서는 기도 중이었다. 절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급한 연락을 받고 계신지 카톡과 전화를 번갈아 받고 계셨다. 나 역시 익숙한 척 방석을 한 장 끌어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교회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대충 알고 있는데 절에서는 뭘 어떤 식으로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 무량수전 내부, 국보 제 45호 소조불상 아미타불



 마침 이곳의 오랜 신도처럼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분과 반갑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불상 앞 봉헌함에다가 봉투 한 장을 내려놓고 합장을 하셨다. 그리고는 방석을 끌어다가 바로 내 옆에 앉으셨다. 멀뚱멀뚱 불상을 구경 중이던 내 옆에서 아주머니께서는 절을 하기 시작하셨다. 혼자 조용히 아주머니께서 몇 번이나 절을 하실지 세어보고 있었다. 100배는 훌쩍 넘은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내뱉으시면서도 멈추지 않고 마지막 1배까지 정성스레 마무리하셨다. 그리고 다시 가볍게 합장을 하시고 방석을 제자리에 정리한 뒤 밖으로 나가셨다. 고려 시대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소망을 이야기하고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사람들의 옷차림, 머리 모양, 불전에 올린 물건의 형태는 바뀌었을지라도 황금빛 불상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는 그 간절한 마음만큼은 같았을 것이다.


 극락전 내부의 공기는 입김이 나올만큼 차가웠다. 좌우로 사람 100명 정도가 들어앉을만한 공간이었다. 뒤쪽 벽에는 팥죽색 모포와 방석이 쌓여 있었다. 신발 두는 곳과 마찬가지로, 신도용과 스님용이 구분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은 채로 건물 안 구석에서 구석으로 고개만 이리저리 돌렸다. 천장에서 3분의 1 정도 되는 높이에는 격자 모양으로 철사 줄이 매여 있었다. 그 줄 위쪽으로 는 3단으로 천장 기둥 장식이 있었다. 눈으로 본 것은 있는데 그것을 무어라 부르는지 알 수 없어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멀뚱히 앉아 아미타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칼의 노래>를쓰기 위해 몇 날 며칠 칼 한 자루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김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스물두살 무렵우연히 도서관에서 난중일기를 읽게 되었고 그 책에서 “절망의 시대에서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했다. 난중일기에 매료된 김훈은 그 책을 읽은 뒤, 학교가 싫어지고 영문학이 싫어져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
나는 이 난중일기와 이순신이 처한 절망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겠구나,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그는<칼의 노래>를 써낸다. 그렇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가 자신의 언어를 장악하기 위해 애쓴 오랜 세월이 있었다.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어느 날, 이곳에서 내가 본 것들을 한 편의 멋진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한 인상평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늘 내가 보고 느낀 것 가운데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남은 게 나의 글이 된다. 무량수전 앞 돌 계단에 자리를 깔고 앉아 소백산맥 자락을 내려다 보던 한가로운 반나절의 시간이 언제 어떤 언어로 붙잡아둘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나는 이 곳 무량수전과 그 앞마당의 적요로움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겠구나,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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