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회학 1. 합리적 의심과 변증법적 사고
평일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공립학교 학생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주중에 학교에서 일하는 직원과 교사를 포함한다면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는 미국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에 육박할 것이다.
- 니컬러스 레먼(Nicholas Lemann), (<스쿨: 미국 공교육의 역사>, 세라 먼데일, 세라 B. 패튼 지음)
학교 교육(school)은 정치적이다. 현대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배운 경험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학교 운영을 위해 국민들이 낸 세금이 쓰인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국민 개개인은 학교 교육을 매개로 다양한 방식으로 분배되는 사회적 자원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우리보다 앞서 공립학교제도를 도입한 미국의 경우, 공교육에 관여하는 다양한 정치적 세력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위로는 집권 정당이 자신들의 정치색에 맞는 학교 교육의 방향성을 제도 정책으로 지시하고, 아래로는 흑인, 라틴계, 장애인, 여성과 같이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던 집단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공교육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다면 학생들은 ‘의심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학교 교육’이기 때문에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결과 어느새 자신이 누려야 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자원을 전부 다른 이의 손에 내주게 될지 모른다.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교과서의 선택, 교과 과정의 중점 내용, 학업 성취도 평가방식 등 모든 것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더 나은 현실을 상상해야 한다. 1840년대 미국 보스턴에서는 흑인이 다닐 수 있는 학교의 숫자가 손에 꼽혔다. 이 같은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의심하고, 직접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준 높은 교육이 더 좋은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육받을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자치주에서 미국 최초의 <인종분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에 합리적 의심을 품고 질문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몫을 지킬 수 있다.
교육학 저서인 <Critical Issues in Education>에 따르면 현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는 것, 즉 비판적 사고 능력은 다음 다섯 가지 과정으로 구현된다.
1. 중요한 이슈는 언제나 ‘판단(judgement)’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2. ‘좋은 질문’을 명확한 표현을 통해 제시한다.
3. 예상 가능한 답변과 근거들의 타당성을 평가한다.
4. 제시된 대안을 하나씩 비교 검토한다.
5. 또 다른 질문이나 더 나은 대안이 나오기 전까지 ‘잠정적인' 결론을 그린다.
이 과정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특정 주제에 관해 개인이 주체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개별 정보보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더 나은 대안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고의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한 뒤에도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결론’만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언제나 더 나은 대안이 발견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개인을 피곤하게 한다. 하지만 쉽고, 단순하며 절대적인 답은 모순되거나 적대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다. 우리는 끈질긴 합리적 의심 가운데 더 높은 단계의 해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성(性), 정치, 종교와 관련된 문제들이 어려운 것은 끊임없이 더 나은 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의심이 반복되면 그것은 창조적 대안을 낳는 ‘변증법적 사고’로 발전한다. ‘정(正)-반(反)-합(合)’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사고는 기계적 중립인 ‘회색 지대’에 머무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두 개의 기둥 사이의 텐트가 새로운 막대로 들어 올려지는 것처럼, 두 가지 견해의 가운데서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양 극단을 여전히 포괄하면서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두 입장 사이의 절충이나 한시적인 타협과는 구분해야 한다. 변증법적 사고는 합리적 의심을 거듭한 결과에 인간의 직관과 창조적 발상이 결합해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양쪽 견해와 입장을 충분히 숙고한 결과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고도 남을만한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합리적 비판과 변증법적 사고가 항상 진실이나 해답을 도출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편향과 실수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바탕에는 긍정적인 인식이 깔려있다. 바로 “분명 더 나은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건강한 회의주의’, ‘똑똑한 질문’이라 불러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의심, 좌절, 냉소주의와 구분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잠정적인 대안’을 발견하기까지 양 극단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했는지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좋은 답은 하나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만, 좋은 과정은 많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합리적인 의심, 비판적인 사고, 변증법적 사고에 깔린 긍정성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