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숙 Mar 18. 2016

인공 지능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독일 미디어교육

"모든 매체(Media)가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고 본다.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전자회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인공지능 역시 매체(Media)이다. 책이 눈의 확장이고, 전자회로가 중추신경의 확장이듯 인공지능은 인간 ‘뇌’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공 지능을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한쪽에 매체가 존재하면 반대편엔 그 매체를 사용 중인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IT / 미디어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 매체를 사용하는 ‘인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매체가 발달하고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존재는 거꾸로 소외되는 것이다.  


 세기의 대국이 끝나고 한국인의 마음속엔 인공 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과거 인터넷과 스마트 폰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겪었던 일련의 문제들을 떠올려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인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100%에 가까운 스마트 폰 보급률,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청소년의 인터넷 독해능력(DRA)을 자랑하지만 이와 동시에 아동, 청소년, 성인을 불문하고 온라인 게임과 스마트 폰 ‘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그동안 발달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기보다 전송되는 자극들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몰두해온 결과이다. ‘인공 지능 시대’를 앞둔 우리들의 마음이 이토록 심란한 것은 지금껏 새로운 미디어를 제대로 통제하고 활용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뉴미디어는 소통을 강화하는데 쓰이기보다, 개인을 자기 자신에게 고립시켜왔다. 한 스님이 SNS에 올린 글들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힐링도 직접 사람이 만나지 않고서 셀프(Self)로 한다. 블로그, 1인 출판 등 글을 쓰는 ‘작가’는 많아졌는데 신중하게 남의 글을 읽는 ‘독자’는 줄어들고 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도 각종 메신저로 이야기하는 게 편해진 것이 오늘날 미디어강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미디어는 인간 개인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진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를 더 방해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이런 땅에 인공지능 기술이 보편화되면 과연 긍정적인 변화가 확산될 수 있을까. 어쩌면 효용보다 폐해가 훨씬 크지 않을까.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들의 막연한 불안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미디어는 인간이 인간과 올바른 관계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을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어떤 도구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지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수 있다. 기계적 효율과 기능적 편리함을 이유로 무작정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었다가 뒤늦게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을 찾느라 분주해지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를 맞이하기 전부터 그것을 어떤 식으로 제어할 것인지, 어떤 제어 장치를 통해 긍정성을 확대하고 부정성을 억제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제어 장치의 핵심 가치는 ‘성숙한 인간성’이다. 하지만 이런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기술자들과 정책 입안자들만 머리를 맞댄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직접 미디어를 이용하는 주체들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둘 문제도 결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스마트 교육은 우리에게 좋은 지침을 제공해준다. 독일은 2009년부터 각 주와 각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스마트 교육’을 실시했다. 뉴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갈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합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숙한 인간’을 스마트교육의 중심에 두었다. 단순히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익히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미디어는 인간 자신의 확장이며, 미디어로 연결된 가상의 현실 역시 인간적인 가치판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미래 세대는 어떤 ‘인간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스마트 시대 요구되는 인격과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 3가지 원칙이 고안되었다. 이는 우리가 독일 스마트교육에서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미디어 역량은 반드시 학교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원론적이고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들은 미디어 세계에서의 정체성과 인격 형성, 책임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생산 및 활용 능력을 익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개별 가정교육이나 일상의 여가 시간을 통해 즉흥적이고 비연속적으로 배워서는 안 된다. 유치원과 같은 기초교육 기관에서부터 13학년 정규 교육과정 전체를 통틀어 단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지도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아이의 미디어 이용 습관을 부모 책임의 가정교육에 맡겨두는 것은 일관되지 않은 훈육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둘째, 개인은 자신의 감정과 행위, 관점 및 일상이 미디어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정서적 체험, 가치관, 욕구는 압도적으로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정치, 경제 기술 등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확산되는 미디어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미디어가 어떤 도덕적, 윤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어떤 상업적 의도와 정치적 편향이 감추어져 있는지 비판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경계심도 생기게 된다.     


셋째, 미디어교육은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지시와 전달이 아닌 현장의 교사들, 학생들끼리의 민주적 형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독일 정부는 일방적으로 스마트교육 관련 정책 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는다. 현장 교사들은 지역 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다양한 실천적 사례를 적극 모색한다. ‘학교 연계망’을 통해 각 교육 현장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반영하여 스마트교육의 궁극적인 방향성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한편, 학생들은 또래 친구들과 둘러앉아 자신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한다. 온라인 게임이 폭력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을 교내에서 실제 일어났던 폭력 사건과 연결 지어 그들 스스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지침을 세울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식이다.  


 인간의 기본 능력을 가뿐히 뛰어넘는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에서 ‘진짜 인간’은 소외되기 쉽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경악스러운 승리를 눈앞에서 지켜봤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규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질문이 하루아침에 답을 찾기는 어렵다. 일반 시민 보편이 함께 오랜 시간 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미 겪어 보았던 미디어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미래 세대를 준비시켜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에 있어 '미디어 역량'은 단순히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정상적인 직장을 구해 경제활동을 하고, 평등한 사회 참여를 통해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역량으로 간주될 것이다. 우리는 또 한번 인공지능이란 미디어에 중독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활용해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미디어에 대한 고민과 학교 교육을 통해 결정될 문제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전체 인구의 20%뿐이지만 미래에는 그들이 100%가 될 것이다.


"한국의 스마트 교육은 정보화 학습을 스마트기기 사용 능력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한 기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