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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Apr 15. 2016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이다

2012년 대선 안철수 - 문재인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을 기억하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현상’이 있었다. 후보 등록을 한 달 앞두고, 야권에서는 안철수 문재인 후보 사이에 단일화 움직임이 시작된다. 11월 5일,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단독 회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개적인 단일화 방식 협의는 깨어지길 반복한다. 22일 오전 10시 30분, 두 후보 단일화 방식에 대한 비공개 단독 회동을 가졌지만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결국 두 후보는 단일화 방식 협의에 실패했다. 23일 후보 등록일을 이틀 앞두고 안철수 후보는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백의종군’하겠다는 선언문을 남기고. 12월 19일 대선 당일, 안철수 후보는 선거가 종료되기도 전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우리 아버지는 이 일에 대해 두고두고 이야기하신다. 정말 문 후보를 지지한다면, 정치 개혁을 원한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됐다는 것이다.


 18대 대선은 내가 직접 우리나라의 대표를 뽑는 첫 선거였다. 그래서인지 대선을 몇 달 앞두고서 안철수 후보가 학교에 강연을 왔을 때, 좌석이 없어 강연장 계단에 앉으면서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든지 연락하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사주겠다는 그였다. 그는 나에게 교수님 같은 인자함을 갖추면서 ‘말이 통하는’ 느낌이 들었던 첫 정치인이었다. 그토록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그였지만 단일화 방식 협의에는 실패했다. 정치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공개 선상에서 단일화 협의를 이뤄나갔으면 했다.

@ 이것이 과정을 무시하고 얻어낸 결과였다.

 나에겐 원칙을 세워나가는 과정 자체가 ‘승산이 있는 후보’를 골라내는 일보다 더 중요했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선례를 남기길 바랐다. 대선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사실 상관없었다. 치졸하고 민망한 모습이라도 국민들 앞에 드러내 놓고 하길 원했다. 정작 중요한 결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결과만 통보받은 입장에서 표를 가진 국민으로서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는 삼겹살에 소주를 이야기하며 학생들과 소통하겠다던 그의 말이 진심이라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손 들고 이야기하면 들어주어야지


 이보다 앞서 2011년 6월, 법인화에 반대하며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점거한 일이 있었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해 질 녘까지 본부 앞을 지켰지만 응대해주는 이가 없었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학생들만 우두커니 건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을 들고 이야기하라고 배웠다. 일개 초등학교 학급회의 시간에도 무슨 말이든 손을 들고 이야기하면 들어준다. 그런데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공개적으로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날 어렴풋이나마 민주주의의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진 기분을 맛보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이 원칙 없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였다. 학생들을 몇 날 며칠 세워두고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총장의 모습이 안철수 후보와 겹쳐 보였다. 이미 10년 전 선거 한 번으로 그렇게 많은 것들이 바뀌진 않는다는 현실을 알고 있는 우리 세대이다. 선거판에서의 빛나는 승리보다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가 지켜지는 과정 자체가 훨씬 더 값진 것이란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결국 단일화한 후보는 대선에서도 패했고,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통해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정치 효능감’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되었다.  


@ 민주주의는 지난한 '과정'이다


 권력은 이기고 보는 게 맞다. 정치판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는 수식이 어울리는 장소도 없다. 하지만 승부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전투는 계속되고 전쟁은 수십 년간 계속될지 모른다. 2016년 총선에서 기존 권력의 독주를 막았지만, 2017년 대선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민주주의의 꽃이 피었지만 열매를 맺기 위해선 더욱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과정 과정에 명분을 부여해줄 ‘보편적인 가치’가 요청된다. 이번 총선의 결과과 관계없이 2012년 두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서 실망한 국민들이 있다. 그들은 지지 기반을 세우는 데 성공한 두 야권 후보가 앞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주목할 것이다. 이번 총선의 민의를 잘 살펴 국민들이 원하는 새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새로 금배지를 달게 된 사람들은 관객들의 요청에 의해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들일뿐이다. 언제든지 갈아치워 질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 이제 열매를 맺어갈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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