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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n 15. 2016

혐오하거나, 잘 알지 못하거나

- 올랜드 총기난사 사건과 퀴어 영화 <호수의 이방인>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지역의 유명 동성애자 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용의자는 이슬람 국가에 충성을 맹세한 아프가니스탄계 남성 오마르 마틴(29)이었다. "한 발, 한 발, 그리고 한 발이 이어지며 복도가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목격자 크리스토퍼 핸슨은 폭죽이 쏘아올려지던 새벽 2시경 클럽 '펄스'의 잔혹한 풍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오마르 마틴은 49명의 목숨을 빼앗고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뒤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사건의 종결과 동시에 용의자가 이슬람 국가와 관련이 있고, 자신의 아내를 폭행한 전력이 있으며, 동성애를 혐오했다는 사실이 차례대로 알려졌다. 오마르 마틴의 범행 동기가 윤곽을 드러내는 듯 싶었다. 하지만 그가 지난 3년간 게이 클럽을 정기적으로 드나들었으며 게이 전용 만남 앱인 '잭디'를 통해 실제 한 남성과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가 게이 클럽 안의 100명의 사람들을  총으로 저격한 이유를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마틴은 스스로 지하드를 수행한다는 마음이었을까, 혐오하는 동성애자들을 단죄할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스스로 알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할 배출구가 필요했을 뿐이었을까. 미국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을 제대로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는 과연 몇 가지나 될까?

 프랑스인 감독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 에도 수많은 동성애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올랜도의 펄스와 같은 호숫가에 모여 파트너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나체로 호숫가에 누워 햇볕을 쬐거나,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파트너를 만난다. 풀숲 여기저기에서는 짝이 맺어진 커플들이 거리낌없이 정사를 즐긴다. 2013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감독상을 받은 이 작품은 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다음은 영화 줄거리에 대한 짧막한 소개이다.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에로틱한 정사와 히치콕식의 도망자 스릴러가 뒤섞이는 동성애 영화. 남자들만의 특별한 공간인 한 호숫가에서 느긋한 성격의 프랭크는 치명적인 매력의 옴므파칼 미셸에게 빠져든다. 그는 결국 사랑과 죽음의 불안한 기로에 서게 된다"


 이 영화에는 '동성애자'인 '살인마'가 등장한다. 단순히 게이 로맨스물이라 생각했던 나는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부터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옴므파탈'인 미셸은 자신의 파트너였던 한 남자를 호숫가에 빠트려 죽여버린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그에게 싫증이 났던건지. 물 속에서 나눈 전희에 지나치게 흥분해서였는지 그는 사람 하나를 호숫가 바닥에 가라앉힌다. 더 기묘한 것은 살인을 저지른 바로 다음 날 태연하게 다시 호숫가를 찾아 새 파트너를 찾는 그의 대담함이었다. 영화의 후반부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눈치챈 인물들 역시 그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다.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여봤기 때문일까.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일까.  그가 어떤 생각으로 사람을 죽였는지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운 결말이었다.

 그들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우리들은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의 정체를 알고 어두운 숲속으로 몸을 숨긴 파트너를 불러 내는 미셸의 목소리는 공포스럽다. 오직 섹스만을 위해 호숫가를 찾고, 연인에게마저 자신의 개인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던 살인자는 사실 구릿빛 피부에 잘 빠진 몸매를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거리낌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들은 관객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게이들은 몸매가 잘 빠지고, 타인과의 대화에 능숙하며, 어떤 집단보다 '힙'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가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 미셸 역시 그런 전형에 들어맞는 게이였다. 하지만 그가 명백히 위험한 인물로 돌변하는 순간 우리는 욕정에 미친놈, 소시오패스로 단정짓고 이해의 범주 밖으로 내쫓는다.


@ 호숫가로 걸어들어가는 미셸을 바라보는 주인공 <호수의 이방인> 스틸컷


 영화가 끝나고 <화차>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과 허핑턴포스트 편집인 김도훈 씨가 관객과의 만남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를 평범한 게이 남성이라고 소개한 김도훈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너무나 쉽게 '혐오하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한다'고 이야기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나이 먹은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인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일 것이라며, <호수의 이방인>에 등장한 호숫가와 같은 게이들의 '크루징 스팟'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단순히 성적 욕망을 배출하기 위한 만남의 장소가 미국 유럽에는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퀴어 문화, 게이 커뮤니티가 빠른 속도로 와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이야기했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서 수많은 게이 커플들이 이성애자들과 같이 한 파트너와 결혼을 맹세하고, 교외에 큰 집을 사고,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행복한 가족사진을 찍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가장 힙하고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는 그들 역시 전통적인 가족 문화에 속하기를 누구보다 원해왔음을 보여준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혐오하거나, '아직'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거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혐오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대상에 대한 나의 몰이해가 보였다. 나에게 익숙하고 '안전한' 대상에 한정하여 혐오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 <호수의 이방인>에 나오는 미셸을 동성애자이자 살인자로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혐오하지 않는다. 혐오해서는 안된다. 너를 이해한다.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이런 말들은 한참 이른 것일지 모른다. 설령 혐오하더라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를 '죽여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아직 이토록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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