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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n 17. 2016

한국의 미래는 '지방 자치'에 달렸다

지방재정제도 개편과 <퇴계원 산대놀이>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지방재정제도 개편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이재명 성남시 시장을 비롯한 6개의 불교부단체(국가로부터 재정보전을 받지 않는 지자체) 대표들은 이번 개편을 "실험적인 정책들을 추진해온 일부 자치단체를 손보려는 보복성 정책"이라 비난했다. 중앙 정부는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역에 배당되는 지원금을 보다 어려운 지역에 배분해야 한다는 '공정성'을 근거로 이들 6개 단체에게 전달되어야 할 5000억 규모의 교부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낼 것인지의 문제와 별개로 '지방 자치'의 정신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갖는 중요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통과된 각종 정책 사업의 부담을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게 은근슬쩍 떠넘겨온 것은 사실이며, 이번 개편안에 대한 지자체의 반대 여론에도 '의견 조율'이 아닌 지역 이기주의의 프레임을 씌워 지역구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21세기 국가에 요구되는 '지역 자립도', 지방자치의 '실험적 정신'이 갖는 가치에 대한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는 축적된 경험의 부재로 인한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서울공대 26명 석학은 공저 <축적의 시간>을 통해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는 수고 대신, 이미 검증된 단 하나의 모델을 따라하는 데 급급했던 한국 산업이 성장 동력이 수명을 다해가는 문제를 지적한다. 선진국에서 성공한, 중앙정부에서 도입하는 단 하나의 모델을 도입하는 문제만 신경써온 결과 우리는 우리 사회에 가장 적합한 산업 모델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과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수백년의 시간 동안 실패의 경험을 축적해왔다. 중국은 어마어마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단시간에 막대한 양의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어설픈 모방을 통해 어설픈 성공 경험에 도취해온 대한민국은 이제와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경험을 쌓을수도, 넓은 땅덩어리를 앞세워 모든 가능성을 실험해 볼 여지도 없다.

@ 축적의 시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산업 범주를 뛰어넘은 전 사회적인 경험의 축적'이다. 한 두 개의 산업 영역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의 종합적인 혁신을 계속해서 실험해나가지 않으면 한국 산업의 미래는 없다는 진단이다. 어느 나라보다 '지방자치'를 구현하는 데 애를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정부가 5개년 경제 계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총량은 같은 양의 자원을 투입해 10개의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수행했을 때 축적할 수 있는 경험의 총량에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지방자치의 정신을 실천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전국 200여개 지자체 가운데 단 6개만이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오랜 시간 지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지역 전통 문화를 한 가지 사례로 들어 이야기해보자. 201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퇴계원 산대놀이'는 조선시대 교통의 중심지였던 퇴계원(당시 양주) 지역의 특수한 지리적 조건 위해 발달한 가면극이다.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에 전국의 숯, 곡식, 채소, 연초 등이 이 곳에 모여 들면서 당시 100여 호의 객주와 역원이 왕숙천을 끼고 곳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장이 크게 서면 평민, 아녀자, 상인, 부호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했으므로 놀이는 자연스럽게 폭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발달했다. 파계승이 여자를 끼고 놀고, 몰락 양반이 위세를 부리며, 포도 부장이 아녀자를 차지하는 내용은 풍자극인 동시에 마을 사람들 누구나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유희거리였다.


 상인과 부호는 금전적으로 놀이꾼을 지원했고, 덕분에 놀이꾼들은 생업인 연초 가공업과 동시에 지역 전체를 무대로 한 연희극을 연습하는 데 몰두할 수 있었다. 장마당이 서면 평소에 한자리에 있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먹을 것을 나누고, 지배 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 의식을 공유하며 자신들이 살아가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경험을 함께 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맥이 끊겼던 이 놀이 문화가 지난 30여년 간 새롭게 복원되어 오늘날의 퇴계원 지역 주민들이 여전히 즐기는 지역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놀이꾼은 연초 가공업 대신 공사 현장에 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을 한다. 내가 만나본 퇴계원 산대놀이 전승자들은 주중에는 각자의 본업에 충실했다가 주말이면 연습실에 모여 오래된 지역전통의 춤사위를 익히는데 구슬땀을 흘린다. 1년에 한번 돌아오는 정기공연을 위해 4계절 내내 높은 강도의 연습을 십수년간 계속해 오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이들의 무대를 위해 직접 파전을 부치고, 현수막을 내걸며 자신이 지역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를 갖는다.  



 퇴계원 산대놀이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26년간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 역시 하루 아침에 얻어진 것은 아니다. 전승자가 본업으로 돌아가야 하고, 지자체의 지원이 완전히 끊겨버린 때도 있었다. 하지만 퇴계원이라는 지역 사회의 뿌리가 남아 있는 한 지역 문화는 조금씩 명맥을 유지하며 그 옛날 이 지역 사람들이 공유했던 정서가 무엇인지 현대인들도 느껴볼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이는 모든 것이 연결되고 중앙집권화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우선시해왔던 우리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특정 문화권에 한정된 자생력을 갖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몇 안되는 되찬스이기도 하다.


 산업 단위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국가 차원에서 겪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겪는 실패는 해당 지역 사회의 뿌리가 가진 자생력을 바탕으로 자연치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남시의 무상복지 정책은 전국 단위로 밀어붙이기에 위험 부담이 있는 복지 정책을 비교적 안전한 규모로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의 자율도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성공 사례가 아닌,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실패하는 경험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해운, 조선, 건설 과거 우리나라 산업의 주축을 이루었던 산업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미래는 '지방 자치'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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