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다샤 Aug 15. 2020

수상한 집 - 광보네

6 - 역전


광보 삼춘이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거의 정해져 있다. 일본 가요프로그램,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다. 특히 남녀가 한 팀을 이뤄 겨루는 시합을 좋아하신다. 식사준비 때문에 찾아가면 언제나 텔레비전에서 레슬링 시합이 나온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레슬링 시합을 하는 광보 삼춘에게 왜 그렇게 레슬링 시합을 좋아하시느냐 물었더니 항상 당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는 이기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저 봐, 초반부터 맞는 사람이 계속 당한다고. 심판이 있지만 몰래 몰래 반칙도 하고, 저 봐 한 사람을 둘이서 곤죽이 되도록 때리잖아. 저 저 의자로 사람을 치네. 저런 나쁜 놈들.”


그렇게 반칙을 쓰는 상대팀을 욕하며 경기에 몰입하신다. 패배 직전까지 몰렸던 팀이 극적인 반전으로 승리하면 마치 자신이 승리한 듯 박수를 친다.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이 미리 자기들끼리 짜고 하는 걸 아는데도 재미있단 말이야.”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프로레슬링이야 어렸을 때 일본에 가서부터 좋아라 했지. 일본에 역발산, 이노키 이런 선수들이 아주 유명했다고. 이노키하고 무하마드 알리하고 시합할 때는 일본 전역에서 생중계를 해주었는데 사람들 기대가 대단했지. 물론 시합내용은 형편없었지만.”


“한국에서도 김일 선수가 유명했어요. 물론 선생님이 일본에 계실 때 활약했으니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박치기. 엄청 유명했어요. 이노키도 김일 박치기에 당했는데.”


“그거야 이노키가 봐 준거지. 기술로는 이노키를 이길 수 없어. 한국에서 하는 시합이니 이노키가 져 준거라고 봐.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이긴다고 하면 얼마나 기쁘겠어.”


그가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 권선징악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결말, 늘 당하던 쪽이 극적으로 승리하는 반전이 있는 시합, 반칙이 정의를 이길 수 없다는 내용이 그를 매료시킨다.     

“링에서 막 맞는 보면 나 보안대에서 맞을 때 생각나. 정신없이 맞아. 한 놈도 아니고 여러 놈들이 돌아가면서 때려. 레슬링 선수들 돌아가면서 때리는 것처럼 막 돌아가면서 사람을 때린다고. 도망갈 데도 없잖아. 숨을 데도 없고. 내가 링에서 맞고 있는 선수 심정이라니까. 빠져나갈 데가 없어.”     


사각의 링에서 속절없이 당하는 선수를 보면서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는 이 사람. 그런 고통을 느껴가며 왜 저 시합을 보는 걸까?     


“결국에는 이기잖아. 약한 사람이.”     


지난 수십 년간 국가로부터 살점이 뜯겨진 삶을 살며 이렇게 저렇게 치이는 삶을 살다 갔다. 고문, 징역, 연좌제, 전과자, 보안관찰자 등의 이름으로 사람들로부터 사람취급 받지 못하며 살았다. 그랬던 그가 역전승 했다. 시민단체 ‘지금여기에’를 만나 재심을 시작할 수 있었고, 재심을 통해 극적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국가보상금으로 수상한집을 지었다.      


다만 아직 하나의 바람이 남았다.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을 책임을 묻고 혼내주는 것이다. 책임자를 처벌해야만 경기가 종료되고 승리가 선언되는 ‘3 카운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죽기 전에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수상한 집 - 광보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