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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샤 Aug 15. 2020

수상한 집 - 광보네

10 - 평범한 악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주범으로 체포되어 재판받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아이히만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지에서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체포해 수용소로 이송하는 일을 담당했다. 전범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 재판부에 이렇게 항변했다. 


“나는 독일군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준수했고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내가 지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과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며 만났던 고문수사관들의 이야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나야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대공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원리원칙대로 조사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점은 있었지만 대공수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간첩이 어디 순순히 말로해서 자백합니까? 지금에서야 무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영장없이 한두달 잡아두는 것은 관행이었습니다.”     


그것은 광보 삼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광보 삼춘을 잡아다 한 달 이상 조사실에 가두고 고문했던 보안대 수사관들은 재심에서 모두 그들의 죄를 부인했다. 오히려 법과 원칙대로 처리했다고 한다. 그들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한달이상 영장없이 가두고 가혹행위를 하고, 수사서류의 이름을 안기부 수사관 이름으로 조작했던 것은 이전부터 그렇게 해왔던 ‘관행’이라고 했다.


명백한 범죄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이 범죄인지 모르고 그것을 안고 살아왔다. 그런 시민들을 공권력은 늘 존재해 왔던 것처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탄압해도 그것은 합법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과거 광보 삼춘 같은 피해자들이 거의 매일같이 ‘간첩’, ‘대공’이라는 이름으로 대서특필되고 대다수의 시민은 그 기사나 보도를 읽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법적으로 조사실에서 갇혀 고문받고 있던 그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불법과 광란이 판치는 모습을 보고도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그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빚을 지고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 본 한나 아렌트는 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난으로 인한 죽음, 비정규직의 차별, 4.3사건과 같은 학살, 개발로 쫓겨나는 이웃,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받는 이웃의 외침을 그저 바라보는 우리가 공범자, 공동정범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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