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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Aug 18. 2020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글로 쓴 자화상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1차선에 들어가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고야 말았다. 내가 간신히 끌고 온 차는 교차로 앞 2차선 선두에서 멈춰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은 오른발이 떨려왔다. 차 안을 감도는 적막 안에서 또렷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불합격입니다."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 목소리의 온도가 높았다면 덜 속상했을까? 땀이 흥건한 손으로 운전대를 꽉 움켜쥔 채 주행한 5km 거리와 버스를 탈 때마다 맨 앞에 앉아 운전기사 어깨너머로 도로 주행 체계를 익히던 그간의 노력이 단 여섯 음절로 끝이 났다. 나는 나에게 몹시도 화가 났지만 나의 운전 실력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다른 사람들이 세 명이나 차에 타고 있어 마음껏 뱉어낼 수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포 체험을 한 가여운 존재들이었다. 운전면허 강사는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었다. 이 차에 탄 사람들 모두 나로 인해 운전면허 강사의 고충을 뼈저리게 느꼈을 테니. 내가 서툴게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그들의 몸이 난폭한 놀이기구를 탄 마냥 거세게 앞으로 젖혀졌다. 나는 운전하는 내내 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불합격 선고를 받은 후부터 그런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속으로 삭히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 불합격이었다. 두 번 모두 차선 변경을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 2월 나의 최대의 목표는 2종 보통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었는데, 벌써 3월도 훌쩍 지나버리고 벚꽃이 지고 있었다. 직장으로 출퇴근하기는 정말이지 고행의 길이었다. 장지역에서 상일역까지 지하철로, 그리고 상일역에서 학교가 있는 미사 신도시까지 33번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그 33번 버스가 골칫거리였다. 그래도 버스정류장이 있는 상일역 4번 출구에서 가끔 정아 선생님을 만날 때면 함께 지각의 길을 걸을 동지를 만나 든든했다. 그랬던 그녀가 어제, "아직도 그 버스로 통근해요? 존경스럽다. 나는 그 버스 폭발시켜버리고 싶던데." 했다. 그녀는 2주 전부터 자가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다. 내가 운전면허를 따리라 결심한 이유는. 배차 시간이 최소 25분인 그 버스를 타고 통근을 하다 보면 아침부터 여러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서울 끄트머리에서 이제 막 태어난 경기도의 신생도시로 연결되는 교통편은 그거 하나였다. 아무리 집에서 서둘러 빨리 나와도 상일역에서 발이 묶인 나는 초마다 시계를 확인하며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마음을 놓았다 졸였다 해야 했다. 그럴 것이 버스는 어플에도 잡히지 않았고 정류장에는 버스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조차 없었다.
"내려서 뒷자리로 옮겨 타세요."
    나는 그래도 그들이 나를 여기에 내리게 하고 가버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차는 다시 학원으로 돌아왔고 나는 자리를 바꿔 뒷좌석에 앉아 다음 사람의 도전을 꼼짝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내가 진땀을 흘렸던 그 자리에 이제 검정 야구 모자에 츄리닝차림을 한 남자가 앉았다. 뒷좌석에서는 그의 뒤통수만 보여 그가 긴장했는지 아닌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과 길 위 여기저기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저 큰 기계 안에 몸을 접고 앉아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상상되면서 그들이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운전하는 사람들 대단해. 요즘 새삼 느끼는 바야."
"뭐가 대단해? 나도 하는 걸?"
그래. 너에게는 그리 쉬운 그 운전이 나에게는 어렵다고. 특히 차선 변경이.
    지난번에도, 그리고 오늘도 내가 떨어진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교차로에서 유턴을 해야 했지만 나는 끝내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지 못했다. 차선을 바꾸려면 뒷 차 운전자의 느긋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나의 결단력과 스피드, 마지막으로 약간의 운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 모든 것이 부족했다. 차선을 바꾸는 것은 달리고 있는 다른 자동차에게 내가 당신 앞에 새치기할 건데 양보해줄래 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말로 끼어들기. 뒤도 아닌 앞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누군가 때문에 잠시 멈추게 되는 상황을 반길 사람이 누가 있을까? 특히나 내가 몰았던 차는 눈에 확 띄는 노란색에, 지붕에는 '도로 연수 중입니다.'라고 되어 있어 내가 초보 운전임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깜빡이를 틀기만 하면 뒷 차들은 평온하게 달리다가도 나에게 새치기를 당할까 봐 더 쌩쌩 달려왔다. 이것들이 바로 내가 차선을 도무지 바꿀 수 없었던 이유들이었다.  
   나는 학원에서 준 도로주행코스 그림을 보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했고 그 33번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기사 어깨너머로 운전 기술들을 숙지했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은 직접 몸으로 익혀야 하는 법이다. 차선 변경은 특히나 그렇다. 뒤에서 달려오는 차 앞에 차 머리를 들이미는 기술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늘지 않으니. 그러니 우물이 쭈물이인 내가 차선 변경에서 실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 강사 옆에만 앉으면 작아졌다. 버럭버럭. 아가씨는 깜빡이만 잘 켜는 것 같아. 버럭버럭. 서서히 들어가야지 그렇게 핸들을 확 꺾으면 어떡해?
    그런 나와는 달리 츄리닝남은 잘 해내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는 것부터 내가 실패했던 차선 변경까지도. 문득 나는 차선 바꾸기는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우물쭈물하다 놓쳐버린 수많은 기차들을 떠올렸다. 나를 향해 날아오던 공들. 나는 그 공이 나를 칠까 겁이 나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공이 더 이상 나에게 오지 않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도 그 공을 받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불합격 통보에다 내가 지금껏 놓쳐 버린 기회들에 대한 우울한 기억들까지 더해지자 나는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물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한 남자가 보였다. 츄리닝을 입은 그 남자였다. "합격입니다." 좀 전에 나에게 땅땅땅 의사봉을 두들기던 그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뒷좌석에서 나는 츄리닝남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을 그의 얼굴을 상상했다. 그는 잘 해냈다. 딱 한 번 강사에게 잔소리를 들은 것 빼고는. 그도 역시 끼어들기에서 실수를 했다. 강사는 사이드미러를 가리키며 남자에게 잔소리를 했다.
“거울에 있는 글씨 이거 보여요? 읽어봐요! 크게!”
“사물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한 번 더!”
“사물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알았죠? 명심해요."
    그가 강사에게 잔소리를 듣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러면서도 문득 강사가 말한 그 문구, 거울에 쓰여 있는 그 말은 무엇인가 인생의 진리를 담은 멋진 문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정확히 인생의 어떤 철학적인 면과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몸도 무거운데 머릿속이라도 비우고 싶어 졌다.
    나는 학원 데스크에서 다음 시험 일정을 잡고 잡다한 서류들에 서명을 하고 카드를 내밀고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고 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걷고 싶었다. 차가 없었던 옛날에도 이렇게 마냥 걸었겠지. 그래. 좀 느리면 뭐 어때? 언젠가는 도착할 텐데. 운전면허도 오늘 땄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고, 내가 놓친 기회들도 그때 바로 잡았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언젠간 합격할 것이고 기회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그때는 정말 놓치지 말자하며 나는 학원에서 집까지 연결되는 하천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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