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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엘라 Oct 22. 2024

책을 내기로 했어

  “당신에게는 우리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사람 모두 이 책을 읽어도 당신만은 읽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삶의 한 부분이었다가 전부를 흔들어놓은 당신이, 이제는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졌으면 좋겠어. 미워하지 않을게. 그냥 예전처럼 무심하게만 살아 줘. 당신은 그것만 하면 되는 거야.”  

    

  남편 없는 양육, 아빠 없는 성장, 그것은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나의 사투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면, 아들의 사투는 부모에 의한 것이다. 타의에 의해 태어나 타의에 지배당하며 홀로서기를 강요받아온 아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을 제공한 무능과 미숙한 양육을 반성하기보다,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나무랐다.


  낳을 권리는 있어도 태어나지 않을 권리는 없는 인간, 처음부터 인간은 평등하지도 존엄하지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거나 ‘키운 보람도 없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부모로서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다. 만약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낳을 권리를 박탈하는 법이 있다면, 나 같이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은 결코 엄마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을 찾아 걸었던 싱글맘의 이야기다. 고난 속에서 오늘보다 세상너머 세상을 동경하며 위태롭게 살았던 여성가장의 생존기다. 나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거기에는 고통이 없을까, 그곳으로 가는 것이 이곳에서 버티는 것보다 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 때마다 확신 없는 모험을 하느니 자동소멸 될 때까지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살아보자. 이미 모두를 떠났다고 생각하고 버텨보자. 환경이 힘들면 환경을 떠나고, 사람이 힘들면 사람을 떠나서라도 끝까지 살아보자. 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떠나야 할 세상,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보자.’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을 헤매다가 빛을 만났다. 그 후 다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되었고, 가장이 되었고, 공인중개사가 되었고, 만학도가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경험했다. 정치와 종교를 들여다보면서 모순된 정의와 진리를 보았고, 가라지가 알곡을 능가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다. 유린당한 알곡들은 무지렁이가 되어 골방에 갇히거나 별똥별이 되어 스러졌다.

     

  누군가 나에게 ‘글을 쓰는 것도 책을 내는 것도 사명’이라고 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필력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 부름에 글장을 열어 다시 글쟁이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 책이 삶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가장들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삶을 통해 자신에게도 있는 다행을 찾기 바란다. 때로는 타인의 불행을 위로 삼아 용기를 얻는 것도 지혜일 것이다. 절박한 누군가에게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버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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