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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엘라 Oct 22. 2024

가지 못한 길

샌택받지 못한 꿈들의 반란

하나 세계의 오지체험


  초등학교가 최종학력일 뻔했던 내가 대학원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1년을 보낸 후 들어간 곳은 탄광촌의 비정규학교였다. 그곳은 거리가 멀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기 싫어했지만 나는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우여곡절 끝에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몇 개월 차이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늦둥이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던 나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암흑과도 같았다.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고독과의 사투, 삶과 죽음이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까지 꼭 살아야 하느냐’며 무시로 비웃었다.


  암울했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아이가 기숙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는 만학도가 되어 학업을 재개했다. 학부에서는 미디어문예창작을 전공하면서 한국어문화를 복수 전공했다. 한국어교원이 되어 세계의 오지를 두루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당시에는 공급부족으로 한국어교원 2급이면 해외대학에서도 강의기회가 주어졌다. 국가별로 1년씩만 강의하고, 최대한 많은 국가를 다니며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싶었다. 고향을 닮은 각국의 두메를 돌며 사람들을 만나되,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하리라 꿈꾸었다. 그때 딱 거기까지만 공부하고 계획을 실행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가지 못한 길 하나, 세월에 나를 가두고 저 혼자 멀어진다.



대안학교 설립     


  한때 대안학교를 설립해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환경이 열악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꿈을 포기하는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보듬어주며 기댈 곳이 되어주고 싶었다. 이는 나의 청소년기가 불우했던 것이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 꿈을 염두에 두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와 평생교육을 전공했다. 수시로 압류‧국유‧공유재산을 매각하는 공매사이트 ‘온비드(onbid)’를 통해 폐교 등을 검색하며 그날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노인과 청소년이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의 연륜과 경륜은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테고, 청소년과 함께하는 노인의 일상은 보람과 활력으로 채워질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대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화합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국내‧외에 학교를 설립했다는 선후배나 동들의 소식을 들으면 그때의 꿈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슴이 설렌다.

   지 못한 길 둘, 환경에 나를 가두고 저 혼자 멀어진다.



영화감독     


  30대 초반, 강남의 한 비정규 문학학교에서 2년 정도 극본과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감독이 되려면 그에 적합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글쓰기를 하다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공모한 극본 중에 ‘그 여자의 바다’라는 게 있었는데 언젠가 방송국에서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을 보고 ‘내건데 놓쳤네!’하며 아쉬워했다.


  2001년도에 신인상을 받은 수필 ‘천사를 찾습니다.’도 몇 년 전, 같은 제목으로 책이 출판된 것을 보았다. 물론 내가 쓴 것은 단편수필 제목이고 출판된 것은 책제목이지만 그때도 나는 ‘내건데 아쉽네.’ 했다. 그 후, 문장이나 내용이 내 글과 비슷한 글들을 볼 때면 ‘아쉽다만 연발할 게 아니라 누가 내기 전에 내가 먼저 내면 되지’하고 생각했다.


  글은 경험이나 상상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영화는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이 풍부하다. 지금도 영화를 보면서 ‘나도 영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방면에는 무지렁이라는 것을 잊은 채.

  가지 못한 길 셋, 생계에 나를 가두고 저 혼자 멀어진다.     


  행‧불행은 대부분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꿈 또한 그렇다. 내가 가지 못한 길과 걸어온 길 사이에도 늘 선택이 있었다. 가고자 했지만 막혔던 길도 있다. 그러나 가지 못한 길이나, 가고 있는 길이나, 막혔던 길 모두 선택은 스스로 했지만 결과는 내 의지와 무관했다.


  나는 요즘, 선택받지 못해 멀어지는 꿈들의 반란을 보면서 드림리스트를 버킷리스트로 바꾸고 있다. 얼마일지 모를 남은 날들을 헤아리며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가야 할 길로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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