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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엘라 Oct 22. 2024

아픈마음 치료제

다행 찾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고비가 몇 번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홀로서기 위한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나를 두고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던 그때, 나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빠져있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상실의 슬픔과 남겨진 외로움은 누구와 있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칠 남매나 되는 혈육의 배려도 부모님이 만들어주시던 울타리를 대신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사람이 이방인이던 그때,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어느 날, 가까운 친구가 넓고 두툼한 노트를 들고 찾아왔다.

  “읽어봐. 그리고 나도 너한테 답장을 받았으면 좋겠어.”


  그녀가 주고 간 노트 맨 앞장에는 ‘친구야, 우리 다행 찾기를 하자!’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노트의 앞쪽 반 권에는 온갖 힘든 사람들의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고, 나머지 반 권은 비어있었다. 친구는 빈 곳에 그들에게 있어 ‘다행’인 것을 찾아 적으라고 했다. 나는 친구가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노트의 반 권이 그들에 대한 ‘다행 찾기’로 채워질 무렵,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중병을 앓고 있는 남의 고통보다 자기가 앓고 있는 손가락 하나의 아픔을 더 크게 느끼기에,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그랬다.


  다음날부터 남아있는 빈 여백에 나에 대한 다행을 찾아 적었다.

  ‘나는 건강한 육체를 가졌고, 가족을 돌보지 않아도 되고, 오빠언니들도 있고, 친구도 있고, 잠잘 곳도 먹을 것도 있고.......’


  생각을 바꾸니 나에게도 다행인 것이 많았다. 내 슬픔 또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 찾기가 끝난 후, 나는 노트 마지막 장에 ‘지금 내 곁에 네가 있어 다행!’이라고 썼다. 그리고 친구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외출한 나를 본 친구는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를 연발했다. 그 후, 난관에 부딪힐 때면 습관처럼 다행 찾기를 했다. 남아있는 무엇이라도 있으면 ‘이만한 게 다행’이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나에게 다행 찾기를 가르쳐준 친구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수녀가 되었다. 평생 소록도에서 근무하고 싶다더니 몇 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홀연히 수녀가 되었다. 친구가 수녀가 된다고 했을 때, 나는 떼를 쓰듯이 말리며 울었다. 고난으로만 생각했던 길을 선택한 친구가 불쌍해서 울었고, 의지했던 둥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서 울었다.


  친구와 가까이 지내던 수녀님들을 탓하며 친구가 믿는 신을 더욱 미워했다. 어머니를 데려가시더니 이제는 친구마저 떼어놓는다고 원망했다. 친구가 종신서원을 앞두고 천개의 별을 접어주며 ‘너를 가장 먼저 초대할게’라고 말할 때에도, 종신서원이 거행되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서운하고 서러워서 울었다. 세월이 흐르고 개종을 하면서, 나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녀의 선택은 현명했고 그녀가 가는 길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몇 해 전 만났던 친구는 요양원에서 원장으로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우리 모자의 사진도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했다. 그런 든든한 친구가 있어 평생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친구를 위해 기도한다. 그녀가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호해 달라고. 그리고 또 기도한다. 내가 친구를 대신해 어머니에게는 딸이, 동생들에게는 언니와 누나가 되어 보살필 수 있도록 모든 필요를 채달라고, 천사가 어떤 모습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 친구에게도 내가 있어 다행이기를 우리의 신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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