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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Oct 23. 2020

늦은 유월의 흥타령

           팔찌 낀 콩쥐들의 호박마차 시간


                  늦은 유월의 흥타령


6월의 끝에 지인들 부부끼리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개망초들이 흐드러지고, 크로바 꽃으로 꽃팔찌 만들어 끼고, 밤새 울어대는 개구리들에게 질세라  우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온갖 가곡들과 옛 노래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나왔다.

나는 내가 술 잘 마시는 것은 내 탓이 아니요. 조상 탓이다. 내 인생  핑계될 수 있는  조상이 있는 것만도 복 받은 것이라고 건배사를 하자, 거기에 머무르던 북한에서 온  작가는 내 멘트가 재밌다면서 당신은 '나라 탓'하고 산다며 박자를 맞춘다. 윗 나라인지 아랫 나라인지, 뭐 위아래 다겠지만. 이분의 멘트가 찡! 하니 내 가슴에 적셔든다.

남편의 사철가와 흥타령이 이어지자 한때 젊어서 세계를 누비며 춤추고 노래했던  여인은 옆에 있던 보자기를 들고 덩실덩실  즉석 춤사위를 펼친다.  우린 그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었고, 논산 황산벌의 밤은  입담 좋은 집 주인 이 작가님의  얘기 보따리로 끝이 없다.

이 작가님은 어려서 인근 산 정상에 통신탑이 생겨  그 산에 가면 TV가 나온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단다. 몇 아이들과  함께 가도 가도 그 산은 나오지 않고 배는 고프고 캄캄해져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 동네형한테  감정이 남아 그 집 장독대를 돌멩이로  다 깨버렸다는 철없던 시절의 황당한 일들.

공항에서 국하다 양주병이 검열에 걸리자 저기 저 같은 일행들 배낭 속에도 술병이 들어 있다고  고자질하자, 일행들은 한 발씩 뒤로 발을 빼며 물러나고 검시관들은 자기들끼리 피식피식 웃으며 쳐다만 봤다는 에피소드들은  우리들의 배꼽을 가만두지 않았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백제의 한 장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한 발 앞서 떠나보내고 자신도 장렬한 죽음을 택한 이 황산벌에서 우리들에겐 그저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같은 달콤한 시간들일 뿐이었다.

거기 논산에서 꿈 얘기가 나와 모두들 걸판지게 서로들 꿈 풀어내고 놀았는데, 친구들 카톡방에서 같은 주제가 또 나왔다. 내 꿈 얘기를  여기서 또 해야겠다.

난 꿈에 동료들과 어떤 최고급의  호텔에 투숙했다. 그 호텔 사장이 지배인을 통해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 호텔 투숙객들 중에서 '내가 당첨됐다'라고 내 손바닥에 황금 키를 쥐어 준다.

난 지금도 몇 년 전의 꿈인데 그 키를 준 그 사람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니. 눈에는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이마는  유난히도 툭 불거져 나와 범상치 않았던 인상. 난 믿기지가 않아서 꿈에도 물어봤었다.
왜 그 많은 투숙객들 중에서 내가 당첨됐느냐고?
그 호텔 사장 대답이 모든 이들의 이력들을 봤는데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살아서 당첨된 거란다.

와! 그  꿈이 깨고 나서도 얼마나 즐거운지. 내 손에 황금 열쇠를 거머쥐다니.
그  날 기분이 너무 좋아 드는 생각. 오늘 반드시 복권을 사야겠다. 그런데 하루가 너무 바빠 복권 사는 걸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나갔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래, 이건 복권 사는 일회용이 아니야. 이 황금열쇠는 내 문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들까지 해결해주고 풀어내는 만능 황금 키일 거라는 의미를 부여하자 복권 당첨도 부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난 그리 살아가고 있는 듯!
그 황금 키로 늘 하루를 열어가는 듯!

그런데 이 글을  쓰다가  다시 그  꿈을 재해석한다면? 이런 물음을 던지자 이런 느낌이 따라온다. 그 호텔 주인이 진정한 나의 '자아'일 거라고. 그 새 내 사고, 내 생각이 많이 자란 모양이다. 황금 키를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내가, 이제는 황금 키를 누군가에게 주면서 살아가는 느낌이니. 이제야 겨우 난 나만의 삶을 살고 있나 보다. 내 수준만큼의 호텔 사장이 되어서, 내 심리적 영역에서 나만의 경계선 울타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래서 그 호텔 사장의 얼굴이 너무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걸까? 바로 나 자신의 자아를 상징하고 있어서. 타자를 선명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나의 내면을 그만큼 알고 있다는 거다.

꿈은 상징이다.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의 왕도'라고 했다.
꿈은 자연이란다. 물, 나무,  동물식물처럼.
꿈은 내가 각색하고, 내가 연출하고, 내가 배우이고, 내가 관객이다. 온통 나만의 세계고, 내 얘기인 거다.
꿈은 우리 삶에 미래를 알려주는 예지몽의 측면도 있지만, 태반은 그 꿈을 통해 나의 무의식을 건드려 의식을 깨우쳐서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꿈의  기능이고 꿈의 목적이다.

뜻하지 않게 지나간  꿈 얘기를 하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생각은 진화한다'는 말이 실감된다. 오랫동안 꿈을 잊고 살았는데 차제에 꿈과 꿈 해석에 대해 한발 더 들어가야겠다.

      논산 샛강에 흐드러지게 핀 꽃님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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