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끝에 지인들 부부끼리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개망초들이 흐드러지고, 크로바 꽃으로 꽃팔찌 만들어 끼고, 밤새 울어대는 개구리들에게 질세라 우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온갖 가곡들과 옛 노래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나왔다.
나는 내가 술 잘 마시는 것은 내 탓이 아니요. 조상 탓이다. 내 인생 핑계될 수 있는 조상이 있는 것만도 복 받은 것이라고 건배사를 하자, 거기에 머무르던 북한에서 온 작가는 내 멘트가 재밌다면서 당신은 '나라 탓'하고 산다며 박자를 맞춘다. 윗 나라인지 아랫 나라인지, 뭐 위아래 다겠지만. 이분의 멘트가 찡! 하니 내 가슴에 적셔든다.
남편의 사철가와 흥타령이 이어지자 한때 젊어서 세계를 누비며 춤추고 노래했던 한 여인은 옆에 있던 보자기를 들고 덩실덩실 즉석 춤사위를 펼친다. 우린 그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었고, 논산 황산벌의 밤은 입담 좋은 집 주인 이 작가님의 얘기 보따리로 끝이 없다.
이 작가님은 어려서 인근 산 정상에 통신탑이 생겨 그 산에 가면 TV가 나온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단다. 몇 아이들과 함께 가도 가도 그 산은 나오지 않고 배는 고프고 캄캄해져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동네형한테 감정이 남아 그 집 장독대를 돌멩이로 다 깨버렸다는 철없던 시절의 황당한 일들.
공항에서 입국하다 양주병이 검열에 걸리자 저기 저 같은 일행들 배낭 속에도 술병이 들어 있다고 고자질하자, 일행들은 한 발씩 뒤로 발을 빼며 물러나고 검시관들은 자기들끼리 피식피식 웃으며 쳐다만 봤다는 에피소드들은 우리들의 배꼽을 가만두지 않았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백제의 한 장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한 발 앞서 떠나보내고 자신도 장렬한 죽음을 택한 이 황산벌에서 우리들에겐 그저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같은 달콤한 시간들일뿐이었다.
거기 논산에서 꿈 얘기가 나와 모두들 걸판지게 서로들 꿈 풀어내고 놀았는데, 친구들 카톡방에서 같은 주제가 또 나왔다. 내 꿈 얘기를 여기서 또 해야겠다.
난 꿈에 동료들과 어떤 최고급의 호텔에 투숙했다. 그 호텔 사장이 지배인을 통해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 호텔 투숙객들 중에서 '내가 당첨됐다'라고 내 손바닥에 황금 키를 쥐어 준다.
난 지금도 몇 년 전의 꿈인데 그 키를 준 그 사람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생생하니. 눈에는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이마는 유난히도 툭 불거져 나와 범상치 않았던 인상. 난 믿기지가 않아서 꿈에도 물어봤었다. 왜 그 많은 투숙객들 중에서 내가 당첨됐느냐고? 그 호텔 사장 대답이 모든 이들의 이력들을 봤는데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살아서 당첨된 거란다.
와! 그 꿈이 깨고 나서도 얼마나 즐거운지. 내 손에 황금 열쇠를 거머쥐다니. 그 날 기분이 너무 좋아 드는 생각. 오늘 반드시 복권을 사야겠다. 그런데 하루가 너무 바빠 복권 사는 걸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나갔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다! 그래, 이건 복권 사는 일회용이 아니야. 이 황금열쇠는 내 문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제들까지 해결해주고 풀어내는 만능 황금 키일 거라는 의미를 부여하자 복권 당첨도 부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난 그리 살아가고 있는 듯! 그 황금 키로 늘 하루를 열어가는 듯!
그런데 이 글을 쓰다가 다시 그 꿈을 재해석한다면? 이런 물음을 던지자 이런 느낌이 따라온다. 그 호텔 주인이 진정한 나의 '자아'일 거라고. 그 새 내 사고, 내 생각이 많이 자란 모양이다. 황금 키를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내가, 이제는 황금 키를 누군가에게 주면서 살아가는 느낌이니. 이제야 겨우 난 나만의 삶을 살고 있나 보다. 내 수준만큼의 호텔 사장이 되어서, 내 심리적 영역에서 나만의 경계선 울타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래서 그 호텔 사장의 얼굴이 너무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걸까? 바로 나 자신의 자아를 상징하고 있어서. 타자를 선명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나의 내면을 그만큼 알고 있다는 거다.
꿈은 상징이다.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의 왕도'라고 했다. 꿈은 자연이란다. 물, 나무, 동물식물처럼. 꿈은 내가 각색하고, 내가 연출하고, 내가 배우이고, 내가 관객이다. 온통 나만의 세계고, 내 얘기인 거다. 꿈은 우리 삶에 미래를 알려주는 예지몽의 측면도 있지만, 태반은 그 꿈을 통해 나의 무의식을 건드려 의식을 깨우쳐서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꿈의 기능이고 꿈의 목적이다.
뜻하지 않게 지나간 꿈 얘기를 하다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생각은 진화한다'는 말이 실감된다. 오랫동안 꿈을 잊고 살았는데 차제에 꿈과 꿈 해석에 대해 한발 더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