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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Oct 24. 2020

수말스런 여자의 일상 2


           말스런 여자의 일상 2

얼마 전부터 하루의 일상이 버겁고 숨 가쁘게 돌아간다. 이제 연로하시고 더 이상은 혼자 사시기 힘들어하셔서 지방에 사시던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친 지 한 달이 채 안 된다. 황소고집처럼  꿈적도 안 하던 내 체중은  어머니 오신 지 2주 만에 2kg이 줄행랑쳤다. 역시 시어머니의 위력은 대단하다.

우리 문화 수직 사회 구조에 이미 푹 젖어 사시는 분, 당신도 권위자나 어른들께는 순복 하며 사셨다. 한편으론 아랫사람들은 좌지우지하며 매사를 통제하고 간섭하셔야만 '당신의 살아있음'이 느껴지나 보다.
제일 만만한 일 순위가 맏며느리 아니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고 합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 그녀가 부럽다!."
"누구?"
" 로라. "

4월의 끝자락에 " 인형의 집 part 2"라는 연극을 봤다. 평생 연극 본 횟수도 손가락으로 셀 정도지만, 이런 공연도 어디서 공짜 티켓이나  생겨야 가는 정도인데,
이번 작품은 호기심이 생겨  큰 맘먹고 털 것도 없는 호주머니 탈탈 털어서 지인들을 초대하여 식사까지 풀 서비스로 쿨하게 쐈다.

인형의 집 파트 2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원작을 미국의 투 카스 네이스 극작가가 인형의 집 15년 뒤를 상상하여  쓴 작품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가족을  떠난 로라가 15년 후 성공한 작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남편, 유모, 딸이 그간의 정지됐던 시간들이  봇물 터지듯 터지며, 자신의 입장들을 쏟아내며, 지난  시간들을 더듬어가며, 각 인물들은 자신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명배우들의 불꽃 튀는 논쟁 속에서  웃음보따리도 간간히  안겨주는 봄날의 힐링이었다.         
                     
19세기에 여자가 집을 나간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로라로서는 죽음을 각오한 것이리라.
인형처럼 살 수 없기에 감행한 대단한 결단이다.
"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나간 줄 아느냐"는  결혼을 앞둔 딸의 항변에 로라는 "너는 아직 인생을 시작도 안 해봤다"라고 일갈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 문화라면, 아니 나라면, 우선 자식 앞에서는 무조건 죄인 입장이 되어  말이 없을 것 같다. 또 다른 측면은 엄마 없이 성장한 딸의 고통을 로라는 짐작 못할 바가 아니나, 더 근원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했기 때문이겠지.

로라는 집에 돌아와 토르발트(남편)와 서로 격한 의견과 감정들을 쏟아내지만, 예전의 삶과는 조금은 다른  숨통이 트이는 소통을 경험하면서 인형의 집을 다시 떠난다. 집을 나서는 로라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거라고 여기니 내 마음도 덩달아 가볍다.

내 얘기하다 삼천포로 잠깐 빠졌다.
어머니 오시고 짐 정리  이틀하고 사흘 째 되던 날 남편은 돈 벌겠다고 출근했다.
정년도 채우지 않고 퇴사하여 여태 놀다가 떼돈도 아니고 알바 몇 푼 벌겠다고 집을 나간다? 나가도 내가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가 무신 로라인가?

'그래, 당신도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우면 벌써부터 줄행랑일까!  당신은 그래도 된다'라고 쿨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사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내 영역 속으로 쳐들어와 폭탄을 터뜨리는  시엄니.
'당신도 등골  빠지도록 평생을 자식 위해, 한 가문을 위해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고 한 세상 살아버린  억울함이려니! 당신은 그러셔도 된다'라고 흔쾌히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 내 인생은 성공이다'라고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지금도 "내가 누구한테 지고 사는 것 봤냐"라고 일갈하시는 오마니와 날마다 전쟁 같은 나날을 살아내야 하나보다.

아!
나는 여전히 가끔, 아주 가끔씩은,

" 그녀가 부러울 것 같다!"
"로라?"
"엉!"



*수말스럽다는 착하다, 순하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19년   어느 봄날에.

                     인형의 집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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