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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Oct 27. 2020

꽃이 피었습니다

무슨 꽃일까?
그냥 다육이 일종이라는 것밖에 모른다. 그래, 나에게 정작 중요한  건 꽃 이름이 아니지. '꽃이 피었습니다.'인 거다.
'19년 9월 29일, 아니 이럴 수가! 어느 날 베란다 한쪽 구석 다른 꽃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던 다육이가 꽃망울을 머금었다.

애가 꽃망울을 맺다니, 이 느낌이 뭘까?  굉장히 반갑고 반가움 그 이상이다. 이 꽃에서 나를 보는 듯한 애잔한  마음까지 든다.
그간 내가 알뜰살뜰 이 꽃을 관리하지도, 보살피지도,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꽃을 피우다니. 긴 세월 방치한 채 시들어 죽어가는 지경이 되면 겨우  물 한 바가지 끼얹어주면 그만인 다육이다. 그렇게 무관심 속에 베란다 한쪽 구석에 묻혀 있던  다육이가 거의 9년 만에 꽃을 피웠다.

나는 9년 전에 아파트 리모델링을  했다. 오래전부터 우리 부부는 리모델링을 하자, 말자로 입씨름했다. 결국 내가 막무가내로 '나 쫒아 내려면 쫒아 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였다. 그 공사를 마치고  기념으로 해피트리 화분 하나와 작은 화분에 담긴 다육이 5종류를 샀는데, 그중에 하나가 꽃망울을 틔운 것이다.

너무 기특하다. 너무 고맙다, 너무 사랑스럽다, 너무 신비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꽃을 피우다니, 약 한 달 전에 꽃망울을 머금었는데 더디게 더디게 피어나고 있다. 한 달 전부터 나는 틈만 나면  베란다로 나가 지켜봤다. 애가 오늘은 얼마나 꽃을 피웠나. 너무나 작은 꽃잎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자세히 봐주지 않으면 그게 그거다. 나처럼.

내 모습도 누가 봐주지 않아도, 챙겨주지 않아도 이렇게 아주 작은 꽃처럼, 핀 건지, 안 핀 건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다육이처럼 이렇게 나름 예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다육이에서 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온 내 모습이 오버랩된 거다.
이 다육이에게 모진 생명의 힘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끝에 꽃을 피워낸 다육이가 사랑스럽고 덩달아 나도 사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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