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을 치르듯 코로나 19를 치르는 지구
인류는 그저 넘어갈 수 없는 산을 또 한 번 만났다. 모두가 치르고 겪어내야만 한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건강한 자나 아픈 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선한 이나 악한이나 도대체 인간이라면 예외가 없는 듯하다. 모두가 코로나 19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공평함이란 볼 수 없는 세상살이에 공평이 무언지를 시청각 자료처럼 보여주자는 건가?
우리나라에 코로나 19가 퍼진 지 약 18개월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해결책이 나오니 천만다행이다 싶다. 내가 접종한 어제 날자를 기준으로 일천만 명이 넘었다고 보도됐다.
세상살이 대처에는 언제나 세상 초딩이 같은 나에게뿐 아니라, 코로나19 사건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는 그야말로 대박사건 이리라.
지구가 생겨난 이래, 지구가 통째로 동시에 겪어내야 하는 초대형사건 이리라 여겨진다.
태어나고 만 1세 무렵부터 MMR 혼합백신인 홍역을 필수로 예방 접종하듯이 이제는 코로나19도 그럴까?
이건 한 두 번 맞아서 영구적인 면역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앞날이 불투명하니 마음 한구석이 구름 낀 날씨처럼 남아 있으니 어쩌랴!
지금, 여기에 난 살고 있다. 하여 나도 인간이기에 드뎌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춰 어제 코로나19를 맞았다.
그리고 들어 누워 천장을 보며 카톡을 두들긴다.
즉, 한마디로 이제 살만하다는 거다. 주변에서 말들도 많고,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고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열이 많이 난다가 주요 증상인 것 같다. 약국에는 타이레놀이 다 떨어져서 구입하기가 힘들다고도 한다. 또 접종한 지 당일보다 이틀 째가 더 힘들고. 그런데 난 이틀 째가 더 살만하다. 어제는 온 몸뚱아리가 알 수 없는 나락에 빠진 듯, 햇볕에 시들어가는 노점상의 푸성귀처럼 맥을 못 추고 두통에 하루 종일 시달렸다.
나의 대처법이란 그저 날아든 풍문에 따라 수시로 물만 마셔댔고. 먼저 맞은 남편이 사다 놓고, 별다른 증상이 없어 얌전히 놓여 있는 타이레놀을 어제 두 차례 먹었다. 지금은 몸뚱아리가 한결 가뿐하니 말 그대로 살 것 같다. '후유' 하고 안심이 된다. 내도 드뎌 면역체계가 생기는 중이라고. 조만간 노 마스크를 할 수 있는 일상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이런저런 희망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어제 동네 병원에서의 잔잔한 풍경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바로 나의 다음 차례로, 내 또래로 보이는 부부 얘기다. 그냥 조용히 순서대로 지나갔으면 별다른 느낌이 없었을 텐데. 간호사가 일이 많다 보니 좀 성급한 판단을 했겠지. 빨리 세 분 문항 표들을 작성해달라고 짜증이 묻어나는 어투로.
그러자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분이 " 아니라고, " 즉 세 사람이 접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 며느리가 오늘 우리 부부가 접종한 줄 알고 저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나도 모르게 그분들께 시선이 집중됐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문항 표들을 대신 작성하며 시부모님들의 궁금한 부분들에 답변해드리며, 코로나19의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화이자의 백신들에 대해 설명해 드리는 모습을 봤다.
요즘 들려오는 며느리상 같지가 않아서 참 보기가 좋았다. 나중에는 손자가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누는 가정사의 정담에 취해 주사 맞고도 20분의 기다리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한 가족의 단란한 일상의 한 면이지만 참 따듯하다.
내 삶이 저절로 비교되며, 우리 부부는 둘이 한꺼번에 아프면 안 되니까 시간차를 두고 예약했다. 또 우린 저렇게 마음 씀씀이가 예쁜 며느리도 없다.
우리 부부는 그 당시 빨리 결혼한 친구들보다는 무려 10년이 늦게 결혼했으니, 두 아들 녀석들도 부모처럼 그리 따라 하겠다는 건지? 이런 건 안 따라 해도 좋으련만. 에휴! 어쩌랴. 이런 걸 다 지 팔자라고 하겠지.
글을 쓰고 있자니 다시 불청객인 두통이 이마를 두드린다. 다시 물을 마시고 타이레놀로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