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온통 연둣빛 물감의 붓으로 그려낸 풋풋한 세상이다. 어제는 출근하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그런데 앞에 뭐가 나타난 줄 아세요? 터널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그러게요."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못 느껴봤거든요. 터널은 그저 주변에 경관을 방해하는 답답한 공간으로만 여겼음을요. 그런데 어제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터널로 진입하는 순간 살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는 그 답답하고 빨리 벗어나기만을 바랬던 어두운 터널이 어떤 때에는 살 것 같은 공간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가 살면서 암흑처럼 어둡다고 느꼈던 시간들도 되짚어보면 내 삶에는 터널을 지나는 안전한 공간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살아가면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어둠의 터널처럼 지나야 만 하는 필수 코스들이 아닐까도 싶고요.
그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눈부시고, 나뭇잎들은 물기를 머금고 윤이 반짝거렸다. 또 퇴근 때는 그 빗줄기로 씻어 놓은 보람도 없이 금세 미세 먼지로 시야가 잿빛 세상으로 변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능력과도 관계없이 비도 쏟아지고, 황사로 뒤덮인 세상도 만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받아들이고 겪는 일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며 겪는 문제들도 마찬가지 이리라.
오늘도 시야는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어버이날이라고 거리는 차량의 물결로 넘실댄다. 자식도 못 알아보는 치매 걸린 시엄니를 찾아뵙고, 가족들과 오후를 즐겼다. 식당은 우리가 나오는 2시가 넘어서까지 사람들은 줄 서서 대기 중이고, 커피숍은 복잡함을 피해서 조금 멀리 나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세상을 본다. 이렇게 온통 세상은 연록의 때깔로 나를 감싸고 너를 감싸며 치유하는 중이라고,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속삭이는 듯.
요즘 자식들이 어쩐다고 말들도 많지만 난 그럴 자격도 없는 엄마다. 하여, 난 너희들은 더 싸가지 없는 자식 노릇 해도 된다고, 그저 너희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럴 때 아들이 한 말이다. 아니라고, 주변에 부모까지 책임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정말 딱하다고. 자기는 이만하면 됐다고 한다. 에휴! 결국은 내가 한수 고수가 돼버렸다. 사실 아들에게 미안함에 한 말인데, 아들은 이미 기가 죽고 나의 미숙함과 잘못을 인정해버린 엄마에게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웃을 때는 웃고, 울 때는 울고, 지랄 떨 때는 떨면서 이렇게 봄날도 지나가고 세월도 흘러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