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공모전의 생각(수채화, 태동)
학창 시절엔 미술에 관해 소질도 없었지만, 시골에서 그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골에서 자라난 이 코흘리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크레용이라는 것을 처음 만나 하얀 종이 위에 덧칠을 해 본 것이 전부였다. 중학교 시절엔 파스텔을 이용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실기점수는 시원치 않아 언젠가는 복수를 할 것이라는 다짐한 기억만 남아 있다. 고등학교 시절엔 대학 준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림은 전혀 배운 적이 없었으니 그림을 생각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세월이 변하여 이것저것 취미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 것은 10여 년 전부터였다. 가끔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학창 시절 그림에 대한 조그마한 복수도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언제나 실기점수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림을 배우러 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림에 관해 전혀 문외한이었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아내는 그림에 소질이 있고, 관심도 있는 듯해 아내가 먼저 배워보라는 말을 건네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라고 새로운 분야에 들어서는 고민이 없겠는가? 나이가 들어 새로운 곳에 도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아내는 용기를 갖고 수채화를 배우러 나서는 것이 아닌가?
아내의 소질과 용기에 힘을 얻어 수채화라는 분야에 발을 내딛는 쾌거를 이루었다.
아내가 수채화를 배운 지 얼마 지난 후, 아내와 함께 배운다는 것을 무기 삼아 나도 붓을 잡아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선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원근법과 명암 등에 관한 지식을 얻어가면서 수채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이들 틈에 끼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가 50이 넘어서 시작을 했으니 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언제나 느끼고 살아오고 있지만 이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그렇고, 글을 쓰는 것이 그렇고, 평평한 길을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 시작했기에 알아듣는 것도 느리지만, 젊은 사람들이 선뜻 그려내는 그림을 보면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도 해보고, 근근이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갔다. 어차피 시작을 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나와의 약속은 적어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어렴풋이 붓을 잡고 그려보는 그림은 처음엔 어려웠지만 조금씩 물체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그림을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 느끼게 되면서 무작정 화실을 드나들었다. 아내와 일주일에 서너 번 화실을 다니며, 동호회원들과 전시회를 열어 무한한 뿌듯함도 느껴 보았다. 그림에 하나씩 익숙해져 가면서 가끔은 슬럼프가 있어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아내와 함께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림은 계속하게 되었다. 저녁마다 가는 화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듯하니 웃기기도 했을 테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수채화는 거의 1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동안 동호회원끼리 전시회도 여러 차례 해보고, 각종 공모전에도 출품도 하면서 소소한 재미를 갖게 되었다. 더러는 특선이라는 것도 해보고, 입선도 해 보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그림에 자그마한 눈이 트이고,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은 역시 어렵다는 것을 늘 느끼며 오늘도 화실로 향하고 있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얼마 전에 그렸던 그림이 부족해 보이고 왜 그렇게 그렸나를 항상 반성하게 된다. 그러니 아마추어 화가가 섣불리 그림을 선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되었다. 내 그림을 선물하고 나서 그 그림을 나중에 보면 얼마나 부족한가를 알기에, 선뜻 선물하기기 망설여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감히 이 그림을 누구한테 선물을 하겠는가? 내가 소장하면서 가끔 추억거리로 들추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수채화를 보는 눈이 조금씩 생기면서 각종 공모전에 출품 권유도 있고,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었다. 출품을 해볼까 말까를 여러 차례 고민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왕 그리는 그림을 출품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공모전 출품이 시작되었는데, 올해까지 여러 차례 공모전에 출품해 보았다. 공모전에 응모를 하는 것은 입상을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 그림이 다른 사람한테 얼마나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고 싶기도 해서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공모전에 출품을 하면서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곳이 또 있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이었는데, 입상이라는 욕심도 있었지만 어떤 대회인가라는 생각에 어렵게 준비하였다. 오랜 기간 준비를 하면서 여러 차례 생각을 했지만, 그림을 잘 알지도 못하는 초보자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이라는 큰 공모전에 출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작품을 제출했으나 마음은 편안했다. 이왕 응모를 했으니 입상도 좋지만, 참여하는데 의의를 갖자는 마음으로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누구나 출품을 했으면 당선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던가?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보기 좋게 참가에 의의를 두는 출품이 되고 말았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출품을 하니 그러려니 하면서 그림에 더 열중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구나! "라는 것을 알려 준 공모전도 참, 많았다.
그럴듯한 명칭을 내건 곳의 공모전 이야기이다. 언젠가 입상한 경험이 있는 대회에 작품 중에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제출했다. 공모전에 출품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이기에 소홀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여 그린 작품을 사진을 찍어 보내고, 1차 심사결과가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번에는 실물을 제출하여 작품 심사를 받아야 했다.
작품을 제출하고 심사하는 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누구나 같은 심정 이리라. 심사결과가 나오는 날을 고대하게 되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누구나 같을 것이다.
컴퓨터를 켜 볼까?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 볼까?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잖아!
심사결과를 손꼽아 기다리다 발표 결과를 보니 운이 좋게도 입상이 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그래도 서운하지는 않은 결과를 얻어 뿌듯하기도 하고, 그림에 더 매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입상을 했으니 내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찾아가 봐야 할 것 아닌가? 내 그림이 모든 사람 앞에 선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설렘과 뿌듯한 마음에 내 그림도 보고, 더불어 우수상과 최우수상 그리고 대상 작품을 보러 전시장을 찾았다. 아내도 입상이 되어 기쁜 마음으로 우수상과 최우수상 그리고 대상은 도대체 어떤 작품일까라는 큰 기대를 안고 전시장을 찾았다. 그러나 대상을 만나는 순간, 많은 생각이 떠 올랐다.
전시장을 찾아서 만난 대상을 받은 작품을 보고 '보는 눈이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보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심사를 했을까? 어떤 눈을 가진 사람들이 심사를 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동일한 작품을 놓고도 보는 눈이 정말 다르고, 특히 나와 같은 초보자의 눈과 심사를 맡았던 전문가의 눈이 정말 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일 년이 지나고, 작년 공모전의 뒤끝이 깨끗하지 못했으니 한 번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보는 눈이 다르더라도 많이 다르지 않다면 한 번쯤 다시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더구나 전국 미술대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있지 않은가? 전국대회에서 응모했지만 낙선되었기에 작년에 출품했던 공모전에 또 응모해 보기로 했다. 어느 작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전국대회에 출품하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그렸던 작품이었다. 전 해와 같은 방법으로 사진을 보내고, 실물을 전시해 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입상은 했지만 역시, 심사위원들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었는가 보다.
지난해와 같은 생각으로 대상이나 최우수상을 보고 싶어 전시장을 또 찾았다. 지난해와는 다르려니 생각하면서 찾은 전시장은 역시 '보는 눈이 여전히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내 작품보다는 훨씬 깊이가 있고, 작품성이 있는 아내 작품이 자꾸 생각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한 작품과 똑같은 수준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 '보는 눈이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면서 누구에게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게 평가받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성취감이 있고, 만들어지는 대상물이 있으니 꾸준히 작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던가?
오늘도 10년 가까이 오가는 화실을 아내와 함께 다녀오면서, 한결같이 공모전에 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다니는 화실에 이것저것을 핑계 삼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과 특별히 무엇을 얻는다기 보다는' 나와의 놀이'를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올 해도 여름이 익어가는 7월이 가고 청포도 익어가는 8월이 오면, 지금 한창 작업 중인 작품이 완성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느라 한동안 바빠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