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추억,라오스의 아침 풍경)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작은 시골집에서 한동안을 혼자 사시었다. 처음엔 몇 해 위이신 고모님이 말동무 삼아 같이 사셨지만, 고모님마저 돌아가시곤 혼자 사시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 도시에 사는 아들 집에 오시면 늘 답답해하시며 근처 허름한 비닐하우스에 가셨는데, 그곳엔 동네 노인들이 모여 화투를 치기도 하고, 막걸리도 나누며 놀 수 있는 동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 그것도 지루해하시면서 우리 집에 계시라는 말에는 전혀 상관없이 기어코 시골집으로 가시곤 했다.
시골에서 혼자 계시는 것이 안타까워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드리고, 시간이 나면 수시로 시골집을 드나들었다. 무슨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어머니가 계시니 그냥 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텃밭에 채소를 가꾸시면서 소일도 하시고, 가끔은 동네의 대소사에 참여하시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시 었다. 텃밭을 일구는 일이 어려워하실까 봐 시간을 내어 도와드리기도 하고, 작은 텃밭이지만 농사일을 그만두라는 말씀엔 상관하지 않으셨다. 시골에서 그것마저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는듯하여, 힘들게 하시는 밭일을 모르는 척 외면하기도 했지만 늘 불편하기만 했다.
하지만 얼마의 세월이 흐르자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지루하셨는지 어머니는 염소를 한 마리 키우고 싶어 한 마리 사고 싶다는 것이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가 염소를 기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데, 가족들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기어코 염소 한 마리를 구입하시고 말았다. 혼자 사시면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에게 밥도 주고 풀도 먹이면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함이려니 했다. 원래 부지런하신 어머니이기에 텃밭을 일구시고, 적적한 시골집에서 염소를 돌보시며 잘 지내시었다.
다만 어머니가 언제나 집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기에 집을 비워야 할 때가 고민이었다. 가끔은 이웃에게 신세를 지기도 하고, 먹이를 많이 주신 후에 외출을 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꽤 성가신 일이 되고 말았다. 살아 있는 동물을 굶길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구입할 때보다도 훨씬 헐값에 염소를 팔아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 후,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놀러도 다니면서 몇 해를 더 사시다 돌아가시었다.
염소를 사고, 파는 것은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해 드렸다. 어머니가 힘들게 왜 염소를 키우려 하셨을까?를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일이라 그냥 해드렸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이 흘러,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내고서야 어머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무심했던 철부지 아들의 아둔함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딸아이가 어느 날 시집을 간다는 말에 기쁜 일이라는 생각보다 휑한 가슴이 되어 가슴이 벌렁거려 혼이 났다.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가 나를 떠나려고 한다는 말에 덜컹 겁이 난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에 우리 어머니는 어땠을까? 내가 결혼을 하여 집을 나왔을 때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그것도 아이를 시집보내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철부지인 나였다.
모두가 세상의 섭리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모를리는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부모님 두 분이 사실 때는 일도 하시고, 가끔은 다투기도 하시면서 그런대로 사셨으리라.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부모님들은 많이 외롭고 아쉬워 그렇게 밤낮으로 일만 하셨나 보다. 그것이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외로움을 잊고 사는 유일한 낙이었나 보다. 알뜰하게 농사지어 쌀을 보내주시고, 푸성귀를 바리바리 싸 주시는 것이 그들의 낙이기도 했지만, 쓸쓸함과 허전함을 이겨내는 수단이기도 했는가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혼자가 되시자 그 허망감과 외로움을 잊을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주말마다 시골집을 찾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했는지 알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은퇴를 하고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설픈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기도 하면서 가끔은 해외여행도 다니는 즐거움을 찾아가려고 노력을 한다. 오래전부터 하던 마라톤은 힘에 겨워 체육관에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조그만 텃밭에 채소를 심고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세월의 무게와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홀로 시골에 사시면서 어머님이 염소를 키우신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염소를 키우신다는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아들을 얼마나 아둔해하셨을까?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 가슴을 깊이 헤아리지 못함에 늘 안타까워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어머니, 이제 저도 염소를 키워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