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Oct 01. 2020

가을을 줍는 할머니와 그의 짝

(가을 길에 만난 사연, 몽골 흡수골의 아침)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 위치한 골짜기, 여기에는 안개가 자주 내려온다. 안갯속에 숨어 있는 낙엽송이 산을 넘어오는 햇살 따라 고개 들면 신비한 골짜기가 숨을 쉬기 시작한다. 닭이 장막을 연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가을이 가져다준 열매를 거두기 위한 발걸음들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앞산의 주인 할머니는 커다란 비닐 포대를 들고 산속으로 몸을 감추셨다. 산속에 밤사이 떨어진 알밤을 줍기 위해서이다. 가을이 되면 언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밤나무를 심으셨다는 할머니의 가을이면 빠뜨리지 않는 연례행사이다. 그 많은 밤을 모아 무엇을 하실까를 여쭈어보려다 말았다. 안개가 낀 날은 날씨가 맑다고 한다. 얼른 창고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아침 7시가 되었는데도 어디론가 출근하는 차량들이 시골길에 가득하다. 시골길을 가다 보면 자그마한 공장들이 수도 없이 들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무엇을 그렇게 만들 것이 많은지 농사를 짓는 대신 산을 깎고 들을 메워 공장을 지었다. 그래서 시골길도 언제나 자동차가 가득하고, 시골과 공장지대의 구분이 없어져 간다. 가까스로 커다란 길을 가로질러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농사를 짓기 위한 길들이 거의 포장되어 있어 자전거 타는 것이 많이 수월해졌지만, 시골의 맛이 점점 퇴색하는 듯해 아쉽기도 하다. 


시골 동네를 벗어나 만난 것은 할머니의 새벽잠을 설치게 했던 알밤이었다. 길가에 있는 밤나무에서 길가에 알밤을 쏟아 놓았기 때문이다. 미쳐 사람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지나는 차량에 수난을 당했고, 곳곳에는 다람쥐의 저녁거리가 된 흔적들이 널려있다. 그럼에도 곳곳에는 알밤이 길가에 벌러덩 누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니 알밤이 벌써 한 주머니가 되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온 주머니가 가득하던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들이다.


추석 즈음이 되면 오랜만에 얻어 입을 수 있는 새 옷, 어머니가 장에서 사다 주시는 추석맞이 선물이 아닌 성물이었다. 어머니가 사다 주시는 새 옷에는 주머니가 많아야 좋았다. 상의에도 주머니가 양쪽으로 있어야 하고, 바지에도 앞으로 두 개만 있으면 서운했다. 뒤쪽으로도 두 개가 더 있으면 대 만족이었다. 이유는 이것저것을 넣고 다니는 것이 좋아서였는데, 그중 하나가 가을이 오면 떨어지는 알밤이었다. 옷에 달려있는 주머니마다 밤을 주어 넣을 수 있음에 언제나 흐뭇했었다. 주머니 속에는 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밤을 깎아 먹을 수 있는 작은 칼이었다. 작은 칼이 밤이 잘 깎아지도록 숫돌에 갈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언제나 든든했다. 먹을 것을 깎아 먹을 수 있고, 나무를 잘라 필요한 용도로 만들 수 있는 엄청난 도구이기 때문이었다. 


주머니가 밤으로 그득해지자 자전거를 타고 다시 시골길을 달렸다. 냇가를 막고 있는 제방 위에는 봄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개망초가 할 일을 다 한 듯이 잎을 검게 물들여 쓸쓸히 서있다. 봄에 싹을 틔워 신선함을 주고, 누구에게는 나물이 되었던 개망초는 한여름 하얀 꽃을 피워 제방을 밝혀주었다.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던 개망초가 가을이 왔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누추해 보여 애처롭기만 하다. 일제강점기 철도 공사 중, 침목에 붙어서 유입되었다고 추정한다는 망초는 이것이 유입되면서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망초'라고 했다고도 하고, 일본이 일부러 씨를 뿌렸다고 하는 등등의 유래가 있는 풀이지만, 요즈음은 어린싹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그 후, 망초꽃보다 더 예쁜 꽃이 나타났는데 이것을 개망초라고 불러 얕잡아 봤다지만, 망초꽃보다는 개망초꽃이 맑은 하얀색을 띠고 있어 훨씬 예쁘기만 하다. 


건너편에는 노란 돼지감자 꽃이 한가득 피었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에 돋아나 마구 번식하는 돼지감자는 사람은 먹지 못하고 돼지나 먹는 감자라 하여 돼지감자라 했으며, 여기저기에 마구 돋아 나와 밭을 못쓰게 한다고 하여 뚱땅지라고도 불렸다 한다. 지금은 당뇨병이나 알코올 중독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쌍떡잎식물로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근처의 가시덤불과 어우러지며 제법 그럴듯한 시골 동네를 밝혀주고 있다. 언뜻 보면 해바라기와도 같아 보이지만 크기가 달라 바로 구분이 된다.


널따란 제방을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만들어 놓은 코스모스는 오늘도 난리가 났다. 어느 시골 이장님의 주도로 주민들의 수고가 이렇게도 멋진 그림을 선사함이 고맙기도 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길을 따라 양쪽으로 가득 핀 코스모스는 지나는 길손을 잡아 놓고, 동네 안까지 걸어가야 하는 발걸음을 만들고 말았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는 그리스어의 Kosmos에서 유래된 것으로, 학명은 Cosmos bipinnatus Cav라고 한다. 들판을 가득 메운 가을의 풍경과 빨강과 분홍이 적당이 섞인 코스모스의 조화는 가을 들길을 가득히 메워 놓았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는 가을 들녘은 한참을 가을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가야 할 가을 길이 있어 길을 잡아 시골길에 접어들자, 다시 발길을 또 잡는 것은 길가에 떨어진 알밤들이다. 다람쥐가 먹고 남은 알밤을 주섬주섬 주워 아직은 여유가 있는 주머니에 넣고 가을 길을 다시 재촉해 본다. 주머니에 가득한 알밤이 왠지 마음까지 뿌듯하게 해주는 것은 아마, 아내도 알밤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긴 제방을 따라 만들어진 자전거길에는 오늘도 밤새 작업을 해놓은 거미들의 흔적이 바람에 날린다. 어딘가에 숨어 먹거리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거미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달려간 냇가에는 오리 한 마리가 아침 물가를 서성인다. 새끼 오리들은 아직도 늦잠을 자는지 어미 혼자 노닐고 있다. 긴 목을 가진 두루미가 멀리서 지나는 길손을 바라보며 경계하지만, 이내 물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제 할 일을 한다. 


가을 물결이 가득한 들판을 지나 푸르른 벚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들어갔다. 한적한 시골길이지만 다리가 불편하신 아주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운동을 하고 있다. 어서 편한 다리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아직은 쓸만한 다리가 있음에 무한한 감사함을 오늘도 갖게 한다. 드디어 아침이면 자주 찾아 밥상을 차리는 쉼터가 가까워왔다. 제방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찬바람을 맞은 싱싱한 호박꽃이 화사하게 웃고 있다. 기나기 장마도 끝났으니 어서 암꽃을 맞이해 실한 열매를 맺고, 가을의 성스런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긴 제방에는 갖가지 꽃들이 가을을 축하해 주고 있다. 진빨강 코스모스에 붉은 열매를 단 수수가 구색을 갖추었고, 물가에는 고마니 풀이 붉은색으로 색의 조화를 이루었다. 자전거 길에 자주 찾던 쉼터에 다가오자 오늘은 한 분의 할아버지가 오신다.


반가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응'이라는 단어 한마디만을 남기고 유유히 걸어가신다. 문득 오래 전의 우리 아버지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말씀이 없으시고, 하실 말씀은 언제나 단답식으로 답하시는 우리 아버지 말이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셨지만 왜 그리 과묵하시고 근엄하셨는지 끝내 여쭈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했다. 언제나 아버지를 내 차에 모시고 여행 한 번쯤 해봤으면 하는 것이 언제나 소원이지만, 그렇게 될 일이 없어 가슴에만 남겨두고 살아간다. 할아버지 뒤에는 장갑을 끼고 손에는 낫을 드신 할머니가 따라오신다.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선은, 식사를 했느냐는 물음이다. 아직 못 먹었다 하니 배고플 텐데 큰일 났다고 하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반된 모습에 웃음을 갖게 하는 아침이다.


옆 밭을 가리키며, 여기 할머니는 왜 안 나오셨느냐는 물음에 조금 있으면 나오신단다. 여기에 올 때마다 만나는 할머니는 아흔다섯이 되신 할머니가 계셨고, 아침으로 가져간 사과를 나누어 드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오늘은 근엄하신 할아버지 한 분과 다정다감하신 할머니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 시골스런 맛을 주는 동네 어르신들이 반갑고도 또 그리워지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니 앞에 유유히 걸어가신 할아버지와 부부이신 할머니였을 거라는 것은 나중에야 짐작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작은 통에 무엇인가를 들고 가시는 모습이 할머니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무엇을 하러 가시느냐는 물음에 심심해서 밤을 주으러 가신다는 것이었고, 할아버지도 밤을 주으러 가시는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평생 짝이 되어 같은 편으로 살아오셨나 보다. 할 말만 하시며 한참 떨어진 거리를 두고 앞서 가시는 할아버지, 그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말없이 따라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우리의 그림이 아니던가? 얼른 내 주머니에 있는 밤을 보여 주었더니 함박웃음으로 웃어 주신다. 심심해서 밤을 주으러 가신다면서 말이다. 많이 주워 오시라는 말에 알았다는 유쾌한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가을은 참 고마운 계절이다. 모든 계절이 고맙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가장 고마운 계절이다. 산에도 먹거리가 널려있고, 넓은 들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벼가 머리를 들지 못할 정도로 익어가고, 밭마다 갖가지 곡식들이 풍년을 이루었다. 그렇게 길었던 장마에도 성스런 가을을 막지 못했으며,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버티어 낸 가을이다. 감사한 계절의 한가운데 서서 성스런 아침밥상을 차렸다. 잘 읽은 붉은 사과 한 개와 실하게 영근 포도 한 송이 그리고 집에서 가지고 온 시원한 커피가 한 병이나 있다. 거기에 며칠 전 시골 장터에서 구입해 두었던 꽈배기까지 있으니 이것보다 좋은 아침상이 어디 있겠는가? 시원한 바람 한 점을 섞고, 거기에 가을 한 방울을 떨어뜨려 들녘에서 맞이하는 아침이야말로 이 가을의 멋진 성찬이 아니던가? 













                                                                                                                                                                                                                                                                                        





























매거진의 이전글 포도향 가득한 동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