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 일, 저 일)
갑자기 딸아이가 문자를 보냈다.
"아빠 시간 괜찮아? 나 폰 액정 깨져서 AS센터에 맡기고 급한 대로 문자 했어 확인되면 문자 줘..."
"응, 그래 왜 그러는데?"
"아빠 혹시, OO번가 아이디 있어?"
"있는데, 왜?"
"아이디랑 비밀번호 알려줘, 먼저 구매할 거 있어서 그래, 문화상품권 10만 원어치만 살게 아빠"
"문자나라로 금액 충전해서 신청한 번호야, 문자만 가능해, 아빠 걸로 먼저 구매할게, 그러면 안돼?"
아무래도 문자 내용도 이상하고, 딸아이가 이런 문자를 남길 것 같지가 않았다. 전화기가 고장 났다고 하니 전화를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럼 사위한테 전화를 해보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했다. 근무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를 다시 보냈다.
"네가 누군데?"
"아빠, 나 누군지 몰라?"
"모르겠는데?"
이것으로 문자는 끊어지고, 대화는 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한테 전화를 했다. 사실 이야기를 하자, 딸아이의 말이다. 너무 무섭단다.
오래전에는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허름한 시외버스를 타면 반드시 등장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물건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어깨에 얹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하는 흔한 상술이 있었다. 승객들에게 막무가내로 번호표를 나누어 준 후, 본인이 직접 추첨을 해서 당첨자를 선정한다. 그러면서 추첨된 사람한테 당첨이 되어서 싸게 물건을 준다며 물건을 파는 상술이었다. 그런데 그 당첨되는 사람 속엔 늘 내가 끼어 있었다. 당시에는 돈이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나중에 생각을 해 보면, 승객 중에서 나와 같이 어리숙한 사람만이 당첨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얄궂은 운은 그것으로 다했나 보다. 왜 내가 이런 선택을 받았어야 할까?
언젠가 전화가 또 왔다. OO지청 수사관이란다. 내가 범죄자들의 대포통장에 관련이 되어 있단다. 그러면서 나의 신상을 모두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재판을 받으러 OO지청으로 출두해야 한단다. 근무 중이고,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어 관련이 없다는 말에 나의 일상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OO지청에 오지 않도록 검사님이 해결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검사라고 하는 사람에게 연결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고맙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해서 전화를 끊고 OO지청으로 전화를 하는데, 전화가 되지 않는다. 내 전화에 계속 전화를 하고 있는지 전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 다시 전화가 왔다. 쉽게 해결해 줄 테니 컴퓨터를 켜고,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전화로 OO지청에 확인을 했다. 의심 없이 보이스 피싱이라는 대답이다.
딸아이가 전화기가 고장 난 시점에 꼭 쇼핑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내가 대포통장을 개설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설령 관련이 되었다 해도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모두가 잠깐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두 사건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으며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알려줄까 말까를 망설였다. 컴퓨터를 열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려고도 했다.
문자를 받은 어젠, 하루 종일 우울했었다. 내가 선택을 받은 것보다도 세상을 살아가기가 점점 버거워진다는 것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상황에 접해야 하는 시대에 잠시 정신줄을 놓으면 모든 것을 잃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동료 아버지가 기천만원을 현금으로 냉장고에 넣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피눈물이 담긴 그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단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 되는 일인데, 그럴 정신없다.
세상이 너무 살아가기 힘들어진다. 잠시 눈을 돌리면 영혼마저 잃을 것 같다. 이일 저 일을 처리하면서 어른이라는 어드밴티지는 생각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고, 어른이 자리를 양보받기를 바라는 것은 불편한 일상이 되었다. 이런 일들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치부하고 살아야 편해졌다. 괴상한 문자를 받고도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간단히 치부해야 하고, 불편한 일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상에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편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작은 일도 커다란 일처럼 생각에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보다 하면서 하루를 마감해 보지만, 나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번호에 당첨이 되는 그런 운마저도 없는가 보다는 시답지 않은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