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도 소풍 2, 아프리카 짐바브웨)
간월도로 접어들면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던 곳에도 사람이 없다. 코로나 19가 만들어 낸 세상의 모습인가 보다. 하지만 커다란 밭에 코스모스가 가득 피었다. 꽃을 피운 코스모스 밭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북적인다. 사진을 찍고 떠들며 가을 하늘 밑을 즐겁게 수놓는다. 길게 가꾸어진 코스모스는 한껏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마침 밀려온 바닷물이 가득해 자주 만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 준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점에도 사람의 흔적이 없다. 곳곳엔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아 가슴이 아프다. 곳곳에 여행객들을 싣고 온 차량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로 붐비던 가게들은 온데간데없이 쓸쓸함만이 바닷가를 맴돌고 있다.
간월도엔 많은 굴밥 집들이 있었지만 몇몇 집만 사람들이 오고 간다. 길가의 대부분 굴밥 집엔 사람 발길이 끊어졌다. 서둘러 가을이면 찾아가는 굴밥 집으로 들어섰다. 여러 곳이 있지만 어제나 사람들이 많은 집으로 들어서며 또, 망설여진다. 같은 굴밥을 파는 집인데, 사람이 없는 집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로 들어 찬 집도 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를 생각하며 들어선 집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금은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는데, 이곳에는 코로나도 상관이 없는지 사람들로 꽉 차있다. 자리에 앉자 주인인듯한 사람이 친절하게 주문을 받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덤으로 주는 것이라면서 굴 부침개를 내 온다.
굴 부침개, 커다란 굴이 들어 있고 노르스름하게 익혀진 것이 먹음직스럽다. 오래전엔 할머니들의 노고로 얻어진 자잘한 굴이 대세였는데, 상위에 놓인 굴은 양식 한 것인 모양이다. 크기도 대단하고 입에 닿는 촉감도 전혀 다르다. 혹시 어리굴젓도 양식 굴로 만들었으면 맛이 없을 텐데 하며 부침개를 먹는다. 그때쯤 이웃 자리엔 세명의 중년 아주머니들이 들어선다. 모두가 친한 친구들 인양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나누는 이야기는 친구 간의 이야기이지만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목소리가 방안에 가득 고인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목소리는 여전하다. 나는 왜 이런 자리만 찾아 앉아야 하는가? 밖에 앉았으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가을의 의식 중 하나인 굴밥을 맛과 멋으로 먹었을 텐데!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굴 부침개를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부침개를 먹고 나자 바로 굴밥이 나왔다. 굴밥은 조금 고실고실한 쌀밥에 자잘한 토종 굴이 섞여야 제맛이다. 밥그릇을 열어보니 밥이 조금 질어 보인다. 거기에 나름대로의 맛을 주려 버섯을 넣고, 이것저것을 넣어 맛을 더해 주려 했다. 하지만 굴밥에 놓인 굴이 자연 굴이 아닌 듯하다. 역시 밥에 얹어 먹을 어리굴젓도 자연 굴이 아닌 양식굴인 듯했다. 먹어보니 역시 맛이 다르고, 식감이 다르다. 밥그릇은 돌솥이 대세인데, 양은으로 만들어진 솥이다. 돌솥이면 맛이 훨씬 더 있겠지만, 밥을 하는데 오래 걸릴 것이다. 주인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지 모르지만, 어렵게 찾는 손님들의 맛을 생각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굴 부침개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밥이 그래서인지 가을의 의식이 상쾌하지는 않다. 그래도 오랜만에 맞이한 가을 의식을 성대하게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웃 아주머니들이 조용하다. 거기도 굴밥이 준비되어 먹고 있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싶은 것은 밥을 먹는 입으로 동시에 떠들 수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굴밥을 적당이 비벼서, 굴을 얹어 먹는 의식을 끝내고 나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간월암을 지나칠 수는 없다.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항구에 들러 토종 어리굴젓을 사면서, 멋진 맛을 기대해 본다. 여기도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만 고기를 낚으려는 사람들이 제방에 가득하다. 고기를 잡으려는 마음이야 다 같겠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고기를 낚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간월암으로 향하는 길도 코로나 예방은 비켜갈 수 없나 보다. 체온을 체크하면서 물이 들어왔으니 들어갈 수는 없단다. 가까이 가보니 물이 들어와 간월암이 물에 갇혔다.
바다 한가운데 간월암이 둥둥 떠 있다. 가느다란 바다 밑의 길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긴 장화를 가슴까지 올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바닷물이 찬 가장자리까지 가서 바라본 간월암은 물속에 떠 있는 작은 절이다. 여기에서 무학대사가 참선을 했단다. 물에 갇힌 절에서 어쩌면 홀가분한 기분이었으리라. 아무것도 가질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바다 가운데 있는 절. 물에 갇혀 있는 절을 바라보고서야 마음대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음이 새롭게 다가온다. 걸어서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서야 걸어갈 수 있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할 수 없이 길을 되짚어 방조제로 나오는 길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꽃밭에 들렀다. 커다란 밭에 가득한 코스모스가 바람을 못 이기고 하늘거린다. 누구의 수고인지 알 수 없지만 지나는 손길마다 사진을 찍고 즐거워함이 큰 보람으로 느껴지리라. 아름다운 가을 전경을 사진에 담고 방조제로 나왔다.
방조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세워놓고 낚시를 즐긴다. 여기서도 고기를 잡는 사람을 볼 수 있을까? 가장자리에 정차를 하고 구경을 해봐도 잡는 사람은 없다.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다. 언제나 내가 없는 사이에만 고기를 잡는가 보다. 다시 차를 몰고 언제나 즐거움을 주는 남당항으로 향했다. AB방조제를 지나 남당항으로 향하는 중간에는 속동전망대 휴게소라는 멋진 포구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에 소나무 숲이 있고, 갖가지 편의시설이 있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대하가 있고 전어가 있는 날, 전망대 휴게소의 쉼터에 앉아 가을 맛을 보는 재미는 더없이 좋다. 앞으로는 얕은 뻘이 펼쳐지고, 뒤로는 소나무가 가득해 언제나 즐거움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굴이 가득한 천북이 나오고, 좌측으로 들어서면 대하와 전어가 한창인 남당항이 나온다. 남당항에 들러 간단한 대하나 전어 맛을 보는 것도 좋은 가을날의 소풍 거리이다. 시간이 허락했으면 안면도의 소나무 숲을 보고, 영평사 구절초를 즐기고 왔으면 했지만 그러지 못했음이 아쉽기만 하다. 달리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없어도 언제나 프로야구만은 빼놓지 않고 보는 야구광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잠실엘 몇 번은 갔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음을 언제나 아쉬워하며 살았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팀이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게임이 있는 날이다. 서둘러 바닷가를 빠져나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야만 했다. 간월도 가을 소풍은 이렇게 끝이 났지만, 다음 소풍지로는 언제, 어디로 가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