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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18. 2020

창덕궁 후원의 단풍 나들이

(창덕궁 후원을 구경하다. 후원 입구의 단풍)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11월 초순에 서울에 사는 처제한테 전화가 왔다. 서울로 가을 나들이를 올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나들이를 갈 수 있다고 얼른 대답을 했다. 불러줄 때 가지 않으면 다시는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짜가 잡히자 아내와 서둘러 서울로 나들이를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보통 나들이가 아니라 서울로 가는 단풍 나들이였다. 서울로 가는 단풍 나들이라고 하면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비원(祕苑) 즉, 창덕궁 후원(昌德宮後苑)으로 가는 단풍 나들이였다. 서울 나들이에 단풍을 본다고 하니 그럴듯한 서울행이 될 것 같아 얼른 대답을 한 것이다.


나에게는 진정한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의 서울 나들이는 언제나 이상한 나들이였다. 가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을 간다. 친구들과 서울서 만난다고 하지만 언제나 간단한 만남이다. 터미널 부근에서 만나 소주 한잔 나누고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또는 잠실 야구장이나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볼만한 경기가 있으면 서울행을 한다. 하지만 경기를 보고 서둘러 내려오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분이다. 또 악기를 손볼 일이 있으면 낙원상가에 들러 볼일만 보고 내려오고 만다.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단풍구경까지 시켜준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그것도 그 유명한 창덕궁 후원의 단풍 나들이였으니 말이다.


서울 나들이는 언제나 긴장이 된다. 길도 너무 복잡해 찾기가 힘들고, 웬 차가 그리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가끔은 차를 몰고 서울에 가기도 했지만, 복잡한 길로 시간을 너무 허비해 이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을 나들이를 떠나는 아침은 꽤 쌀쌀했다. 버스 터미널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자마자 따스한 온기를 주는 후덕하신 기사님 덕분에 곤한 잠을 즐길 수 있었다. 언제나 뜬 눈으로 오가는 버스에서의 단잠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잘 수 없는 못된 성질머리가 오늘은 잠잠했는가 보다.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 내리자 정신이 없기 시작한다. 서두르는 사람들의 모습에 혼이 나갔고, 수없이 오고 가는 차량들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렵게 처제 내외를 만나서 창덕궁 근처의 찻집에 앉아 바라보는 창덕궁의 오전은 평화스럽기만 하다. 노란 은행잎이 행복한 휴식을 주고, 수백 년 묵은 기와지붕이 주는 묵직한 기분은 한없이 안 정스러움을 준다. 이렇게 한가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마셨다. 꽤 사치스러운 오전 시간이 된 듯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한가한 오전 시간을 만끽하고,  12시에 시작되는 창덕궁 후원 입장을 위해 창덕궁으로 들어섰다.


서울에는 궁(宮)이 참, 많다. 가끔 들어보는 궁들은 왜 그렇게도 혼란스러울까? 큰 이유는 아마,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는 왜 소질과 관심이 없을까? 본래부터 외우는 것에 소질이 없는 나였다. 역사시간이 되면 연대를 비롯해서 외울 것이 왜 이리 많은가? 그때부터 역사는 엄청 어렵고도 지루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아온 것이 역사에 대한 인식이었다. 역사는 지루하고 재미없어 역사학자들만 하는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도 접근 방식에 따라 상당히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에서였다. 학교교육이 그런 방법으로의 접근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기도 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회궁, 덕수궁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없었다.                                                                                 


서울에는 조선시대에 지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 5대 궁궐이 있다. 임금님이 사는 집이 궁(宮)이고, 궁을 싸고 있는 망루와 담장을 궐(闕)이라 한다니 이를 합해 궁궐(宮闕)이 되는 것이다. 왕이 거처하는 제1궁궐이 법궁인데,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경복궁이 있다. 법궁의 수리나 화재로 임금이 옮겨 머무는 곳이 이궁(離宮)으로 태종이 지은 창덕궁이 있다. 또한 왕실이 필요에 의해 짓는 궁이 별궁으로 성종이 지은 별궁이 창경궁이란다. 왕이 피난 또는 나들이 가서 머무는 곳이 행궁(行宮)이다.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을 선조가 임진왜란 이후 행궁으로 사용한 덕수궁(경운궁)이 있다. 경희궁은 본래 경덕궁으로 불렸으며, 유사시에 법궁을 떠나 머무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다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고도 하고, 경희궁은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한다. 북궐인 경복궁,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 서궐인 경희궁, 덕수궁을  ‘한양의 5대 궁궐’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고 나서 선조 이후의 왕들은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거처했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했다.

부용지의 단풍, 아름답다.

12시가 되어 동행하게 되는 관광객들 50명이 모였다. 일일이 체온 체크를 하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몇 걸음 들어선 후원의 입구부터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놓는다. 가을이 무르익어 곱게 단장한 단풍 때문이다. 길의 좌우로 물이 든 단풍은 붉게 치장을 하고 어렵게 찾아온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햇살이 풍부하게 찾아온 곳의 단풍은 붉게 물들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아직도 여름 인양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서도 햇살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위대한 햇살은 아름다운 단풍을 물들였고, 곳곳에 가을을 수 놓았으니 말이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무에도 가을이 가득히 왔다. 푸르른 하늘을 바치고 있는 거대한 나무에도 가을의 물감은 피할 수가 없는가 보다.


오늘 찾아가는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진 정원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공간이다.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 불리다 고종 이후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알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불로문, 아련정, 연경당 등 많은 정자와 샘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때 중수한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안고 있는 정원에 들어서자 안내자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부용정과 부용지의 모습은 발걸음을 멎게 할 정도로 단풍과 잘 어우러져 있다. 네모난 부용지 안에는 소나무를 심고 자연을 잘 이용한 둥근 섬이 있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마침 비추는 가을 햇살과 어울린 갖가지 색상의 단풍의 멋은 넋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곳곳에 수백 년의 세월을 이겨낸 나무들이 아직도 씩씩함을 자랑한다. 늘어진 가지마다 아름다움을 가득 안고 긴 세월을 지낸 흔적들을 내려보고 있다. 야트막한 산아래에 펼쳐지는 가을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곳곳에 연못에서도, 작은 도랑에서도, 곳곳의 나뭇가지에서도 가을을 속삭인다. 그렇게 가을을 이야기하는 사이 안내자는 발길을 재촉한다.  


임금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고, 이 문을 통행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불로문을 들어서면 연꽃을 좋아했던 숙종이 사랑한 네모 형태의 '애련지'와 '애련정'이 나온다. 여기에도 가을이 듬뿍 내려 잔잔한 호수에 붉은 낙엽이 드리웠다. 건너편에는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 세자가 사용했던 소박한 의두합(倚斗閤)이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가을이 찾아와 조용한 건물을 내려보고 있음이 너무나 평화스럽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밟아보는 낙엽의 촉감은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낙엽을 쓸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고 즐김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곳곳에 서 있는 우람한 나무들이 아름다운 잎을 가득 달고 있다. 마침 비추는 햇살과 닿아 눈이 부시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서울 나들이이다. 위대한 가을을 다시 만난 것은 깊은 산속에 조용히 자리한 연경당이다.


연경당, 사대부 집의 형태를 그대로 지어 놓은 곳이다. 효명세자가 순조의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모친인 순원왕후의 40세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기도 한 건물이란다. 안으로 들어가면 사대부집의 형태를 그대로 지어 놓았고, 오래 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위쪽으로도 많은 나무들이 자연 그대로 있어 자연과의 어울림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마침 가을이 찾아온 거대한 나무들이 오래된 건물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후원 깊은 골짜기에는 아기자기한 옥류천도 있었다.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인조 14년에 거대한 바위를 깎아 물길을 내어 폭포를 만들고 곡선형의 물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아기자기하게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곳곳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단풍과 어울려 멋진 가을을 선사한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훼손하지 않고 어우러진 작은 집들과 호수는 어느 나라의 정원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멋진 곳이었다. 거대한 바위와 물이 어우러지고, 위쪽으로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함이 가을을 더 빛내주고 있다. 울긋불긋한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작은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이 앙증스럽고, 곳곳에 자리한 정자가 풍류를 즐기는 듯하다. 일본에서 만난 정원이 사람의 손길이 가득한 느낌을 주고, 중국에서 만난 정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우리의 정원은 사람의 손길을 되도록 자제하면서도 자연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음이 멋진 어울림을 준다.


산길을 따라 오르는 곳곳에도 가을이 깊숙이 찾아왔다. 활짝 개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오래전 엄숙한 왕가의 가풍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곳의 산길에도 어김없이 야자매트가 깔려있다. 걷기가 편하고 토양의 유실도 막을 수 있어 좋겠다 싶다. 반면에 우리의 역사가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에 펼쳐진 매트 자락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왜일까?  속리산 세조길을 걸으며 매트로 덮혀진 땅은 어떻게 숨을 쉴까를 생각한 기억이 또 되살아 난다. 가느다란 산길을 따라 거닐음은 가을 막바지를 멋지게 장식해 준다. 모두가 가을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기만 하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옷을 입고 길손을 맞이하고 있고, 수백 년 된 향나무가 아직도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그 너머엔 수백 년 세월을 이겨낸 구중궁궐의 기와가 아직도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은 처제 내외 덕분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서울 나들이를 했다. 그것도 뜻이 있고 아름다운 길을 걷게 되었다. 누구를 초대해서 길을 안내하고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안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그런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어 좋다. 그렇게 할 수 있음이 고맙고도 감사할 뿐이다. 선뜻 언니와 형부를 부르고, 손수 운전을 해가면서 동행해 준 동서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 언제 시골에 불러 아름다움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어야겠다.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창덕궁 후원의 가을 나들이는 역사에 대한 많은 생각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가을날의 나들이였다. 이젠, 멀리서 아름다움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우리의 옛것들을 찾아가는 즐거움도 멋지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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