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Nov 12. 2020

속리산, 세조길을 걷다.

(세조길 단풍 여행, 페루에서 만난 풍경)

속리산 세조길,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직접 걸어 다녔다고 하는 속리산의 관광로이다. 법주사로부터 세심정까지 약 2.4km의 길의 구간이다(나무위키). 2016년, 차가 오가는 도로 옆에 새로운 길을 조성해 호젓하고 운치 있는 길로 태어 난 곳이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이 길을 따라 복천암까지 오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길이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리나무 숲의 단풍은 오늘따라 절정에 달해있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즐기러 이곳을 찾았다. 속리산 입구에서 법주사까지 약 2km가 거대한 고목들로 우거진 숲이 펼쳐지는 오리숲길이다. 이곳을 지나면 세조길이 이어지게 된다.

어제저녁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내일 시간이 있으면 속리산 세조길을 가보자는 것이다. 가끔 만나 식사를 하는 친구 내외와 함께 세조길을 가기로 했다. 친구와 중간에서 만나 속리산이 있는 보은을 지나 속리산 입구에 도착했다. 오전 11시가 거의 되어서 들어선 속리산 입구에는 노란 은행나무 단풍잎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눈에 보이지만, 상점들은 한산하기만 하다. 곳곳에는 퇴색한 건물들이 오래 전의 풍요했던 시절을 무색하게 한다.


건물의 문은 대부분 닫혀있어 대단했던 속리산의 부귀영화를 의심하게 한다. 수많은 여관과 노래방 그리고 음식점들이 쓸쓸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길거리 빈 공간이 많아 수월하게 주차를 하고 속리산 입구의 오리숲길을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아졌다. 거대한 나무에는 오색찬란한 단풍들이 가을이 왔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침 비추는 햇살과 어울려 흔들리는 단풍은 바로 붉은 물감이 쏟아질 듯 아슬아슬하다. 천천히 길을 걸어 오리숲길을 벗어나자 세조길이라는 표시가 나온다.


바로 가면 속리산 법주사가 있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바로 세조길이 나온다. 오래전에 오르던 문장대길은 가끔이지만 오르내리는 차량에 불편하기도 했다. 이젠 세심정까지 오르는 길에는 그럴 일이 없어 편한 길이 되었다. 옆으로는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절정을 맞은 가을 단풍은 발걸음을 잡아 놓기에 충분했다. 어느 잎은 벌써 떨어져 바닥에 누워있기도 하고, 어설픈 날갯짓으로 가지에 매달려 가을 끝을 즐기고 있다. 아직도 코로나 19로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들이 가을을 즐기러 산길로 숨어든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

오르는 길은 데크길을 만들어 오르내리기가 쉬워졌다. 어쩔 수 없어 만들어 놓은 길이지만 가끔 만나는 높은 계단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야트막한 비탈길을 오르는 것보다는 부담스러운 것은 우선은 사람의 보폭에 적당하지 않다. 사람마다 걷는 폭이 달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높이가 적당했으면 하는 바람이 언제나 있다. 한 번에 힘을 주어야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높으면 오르내리기가 훨씬 어려워 해보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르던 길에서 저수지를 만났다.


세조가 바위 그늘에 앉아 사색을 즐겼던 눈썹바위를 지나면 자그마한 저수지가 나온다. 세조는 이곳에 앉아 뭣을 보았을까? 그리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저수지에 드리운 가을이 대답을 해주는 듯하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가을 속에 앉아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는가? 산너머에서 온 가을이 물속에 가득하다. 붉은색과 노란색의 조화는 어느 화가도 그려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거기에 푸르른 침엽수가 섞여 운치를 더해준다. 곳곳에 마련된 의자엔 한가로운 사람들이 앉아 가을을 즐기고 있다. 머릿결이 희끗희끗한 노부부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물속에는 놀란 고기들이 떼 지어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고기를 보는 사람들도 제각각이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왜 이렇게 고기가 많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자그마한 오솔길을 만났다. 양쪽으로 단풍이 열렬이 환영을 하고, 곳곳에 붉은빛이 쏟아진다. 길에는 걷기가 쉬운 야자매트를 깔아 놓았다. 가끔은 야자매트 밑에 있는 흙은 어떻게 숨을 쉴까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본다. 조금은 답답하다는 생각과 편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본다. 쉬엄쉬엄 오른 길을 지나 데크길을 오른다. 데크길에도 붉은 낙엽이 가득하다.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도록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아래쪽으로 흐르는 물 위에도 낙엽이 가득 담겨 있다. 하늘에도 붉은 단풍이 내려왔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하늘 가득히 내려앉았다. 길에도 가득하고, 길 아래 도랑에도 가득하며 하늘에도 단풍만이 있다. 거기에 만난 푸른 하늘은 가을의 정취를 더해 준다. 나무 위에는 딱따구리가 겨울을 지낼 신방을 꾸미느라 바쁜가 보다. 어디선가 똑똑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딱따구리다. 긴 부리로 목을 앞뒤로 오가며 나무를 찍는 소리가 기계음처럼 똑 고르다. 지치지도 않았는지 끊임없이 나무를 쪼는 모습이 집을 짓기에 다급한가 보다. 익어가는 가을 속에 목수의 집짓는 소리가 이채롭다.

호수에도 가을이 가득하고

한참을 올라 세조길 끝인 세심정에 오르자 긴 그림자가 내려왔다. 붉은 단풍도, 노란 단풍도 그리고 푸른 침엽수의 그림자의 색깔이 모두 같아졌다. 모두가 같은 색으로 평등해 좋다. 아름다운 단풍도 덜 익은 나뭇잎도 그리고 단풍이 되지 못한 서러운 잎사귀도 모두가 같아 보여서 좋다.  평평한 의자에 앉아 산에 오면 빼놓을 수 없는 주전부리를 주문했다. 순식간에 막걸리 한잔과 밑반찬이 차려졌다. 작은 막걸리 잔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이 담긴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나자 먹음직한 파전이 나왔다. 두툼한 파전이 제값을 하는 듯하다. 언젠가 동학사 계곡에서 만난 파전은 파전 값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두툼한 밀가루에 굵직한 파가 어울려 입에 넣어도 무엇인가 멋진 맛이 들어간 느낌이다. 동학사에서 만난 파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막걸리 한 모금에 파전 한점 그리고 붉은 단풍이 내려준 가을 한 점은 가을을 실컷 먹은 듯하다. 머리 위로 드리운 붉은 단풍이 막걸리 잔에도 내려와 아직도 머물고 있다. 한참을 앉아 단풍을 보고, 산을 보면서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조길에서의 가을을 만났다. 올라온 세조길을 내려가야 하는 길이 남았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는 법이니 서둘러 길을 잡았다. 오른 길을 두고 반대 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는 긴 그림자가 뒤를 따라온다. 긴 그림자가 밀어주는 힘에 내려오는 길은 한결 쉽다. 하지만 붉은 낙엽을 밟으며 가을 속에 내려가는 길을 가끔 차량이 따라와 가을을 방해한다. 뭐하는 사람들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괜히 시빗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또 한대의 차가 내려오니 조금은 불편하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만나는 가을은 어서 가라 손짓을 한다. 작은 저수지에 늦가을의 그림자가 가득히 왔다. 서둘러 내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바쁘기만 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가을 나들이는 저수지를 끼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 갖가지 가을을 마중하고 오는 늦가을의 오후는 가을을 가득 먹은 듯해 좋다. 남은 가을을 보내기 싫어 느릿느릿 걷는 걸음은 서두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오리숲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