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Aug 20. 2023

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를 그리며, 앞 산에 걸린 달 )

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봄이면 봄의 맛이 있고

여름이면 나름대로의 맛이 숨어 있어

세상은 언제나 깊이 살아 봄직한데


열매가 영그는 여름 깊어가고

뒷산을 넘은 바람이 서늘해지면

봄과 여름을 겪으며 영근 열매를 주고

가을의 성스런 잔치 즐기다 

가을의 아름다움이 못내 아쉬워

나만의 그림 주섬주섬 챙기려 하는 것은

삶의 언저리만 서성대던 철부지도

이제야, 어설픈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대청호반의 여름

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을이 서서히 익어갈 무렵

무던히도 오가던 논두렁에서

홀연히 내뿜으시는 담배연기가

어린 철부지를 그리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옹골찬 열매를 등짐에 지고

종일토록 오가는 당신의 발걸음은

지는 해도 숙연해지는 듯

언제나 발걸음 멈추게 했기에

깊이도 숨었던 그림이 되살아남은

이제, 어설픈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가을은 이렇게 익어가고,

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초록이 그리도 진해지고 

길가에 풀숲이 무성해지면

떨어져 가는 해 그림자 삼아

살림밑천 외양간 식구 앞세우고

하늘 가득 짊어진 풀 등짐이

어린 가슴 숨차도록 성스러웠음이

지금도 가슴 저리도록 되새겨짐은

어리석던 이내 철부지도 

많은 세월을 보냈나 봅니다.


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중복이 지나고 더위가 찾아오면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려는 당신을 찾으려

분주히  시골집을 드나들며

당신들의 숨결 맞으려 했습니다


사철이 지나도 여러 해 가버려

그대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도 내음을 찾을 길 없어

아쉬운 봄을 보내며 하늘 보고

찾아온 여름을 맞으며 하늘 보니

당신들의 그리운 정 되살아나

가을준비 굽이굽이 마쳤습니다.


텅 비어던 허전한 볏논에 

푸름이 가득한 검푸름이 서고

청둥번개 소낙비에 몸을 맡기며

외로운 여름 뻐꾸기 하늘가를 날면


푸름 가득한 뒷산 나뭇가지는

온갖 바람 몸으로 품으며

힘겨운 여름비 기꺼이 맞이하듯

당신들의 삶도 그러했음을

긴 세월이 흘러서야 알았으니

어설프게 그려진 그림 고치며

이제, 성스런 여름밤을 지내려 합니다.

아버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