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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24. 2023

어머님은 늘, 허연 수건과 함께였다.

(어머님의 기억, 가을 들판이 아름답다.)

장맛비가 잠시 멈춘 사이에도 어머님 발걸음은 바쁘셨다. 텃밭에 들깨모를 심어야 했고, 열무밭에 잡풀도 손길이 필요해서다. 익어가는 옥수수도 따야 했고, 장맛비에 쓰러진 고추도 세워줘야 해서다. 

계절에 상관없이 잠시도 쉼이 없는 어머님, 언제든지 내 어머니임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의 머리엔 언제나 허연 수건이 얹혀있었기 때문이다.


긴 고추밭고랑에 허연 수건만이 오고 간다. 오늘도 바쁘신 내 어머님이셨다.  몸에 달려 붙은 벌레를 물리치는데도 수건이 필요했고,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기도 했으며 추위를 막아주기도 했으니 어머님 삶을 지켜내는 필수품이어야 했다. 볼품없는 허름한 수건은 늘 어머님과 한 몸이었고, 삶을 지탱해 주는 큼직한 보물이었다.

울타리를 타고 넘던 호바꽃

여름 한 나절, 어머님은 더위가 그렇게 힘들다 하셨다. 

왜 그랬을까?  왜 더위가 그렇게도 힘이 드셨을까?

어린 철부지가 알지 못했던 어머님의 푸념을 오로지 허연 수건만은 어머님의 뜻을 하고 있었다. 

햇살을 막아 주었고, 흐르는 땀을 닦을 수 있었으며 마음까지 씻어 낼 수 있는 평생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허름한 허연 수건은 휑한 머리에 그늘을 만들어 주기엔 충분했고, 무심한 자식보다 편안한 몸이었다. 널따란 들판에 허연 수건만이 오고 간다. 그늘 한 줌 없는 고추밭에서 머리를 덮고 얼굴을 가리며 삶을 지탱하게 해 주었다. 종일토록 햇살을 가리며 당신의 몸과 마음까지 돌봐준 고마운 수건이었다. 

가을은 늘, 아름답다.

따가운 햇살에 흘러내리는 땀을 씻어 줄 수 있는 것은 머리 위의 수건이었다. 언제나 땀에 절어 있는 수건은 어머님과 떼어 낼 수 없는 어머님 몸의 일부였다. 참다못한 더위에 냇물에 손과 발을 씻는다. 머리에 얹힌 수건은 요긴한 도구였으니 이래저래 수건은 포기할 수 없는 어머님의 필수품이었다.

허연 수건을 알고 있었을 어머님의 소중한 땀의 가치, 무심한 철부지는 어머니이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햇살이 중천으로 다가갈 즈음, 어머님의 발걸음이 바빠지셨다. 가족들의 점심상을 차려야 해서다. 허연 수건은 온몸의 먼지와 고단함을 털어냈다. 부지런히 준비한 점심상을 머리에 얹는다. 머리와 쟁반 사이에는 똬리 역할을 한 것은 허연 수건이었다. 밥과 반찬이 얹힌 쟁반을 이고 부지런히 옮기는 발길이다. 어머니이기에 감내해 낸 세월은 오래도록 흘렀다. 

여름은 익어, 가을로 간다.

왜 더위가 그렇게도 힘겹고, 수건과 함께 했어야 했는지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갔고 머릿결은 희끗하게 변했다. 여기에 드문드문 엷어지는 머리칼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였다. 햇살이 뜨겁고 더위를 참을 수 없었으며, 삶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기 힘겨운 삶이었다. 텅 빈 머리칼을 대신하는 수건이었고, 모진 세월을 덮어주는 수건은 어머님의 몸이 되어야만 했다.


기나긴 장맛비가 삶을 할퀴고 가면서 참기 힘든 폭염이 계속되었다. 이것마저도 불편해 함에 태풍을 만나고 말았다. 잠깐의 삶이 지나면 이마저도 그리움으로 다가 올 세월, 어머님의 머리에 얹혔던 수건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느덧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전 어머님 머리 위에 얹힌 허연 수건은 당신 몸의 일부분이었고, 삶을 이겨내는 버팀이었음을 한참의 세월이 지나고서 알게 된 어리숙한 철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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