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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19. 2020

만년필 자국에서 파란빛이 나다

파란 글씨의 아름다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여곡절 끝에 작은 도회지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다니게 되었다. 어려운 시골 살림에도 뒷바라지를 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보다 좋은 곳으로 진학을 했지만, 삼십 리 자갈길을 버스에 실려 통학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모두가 어색하고 조금은 두려웠던 중학교 생활에서 그래도 제일 신기하게  다가온 것은 영어와의  만남이었다. 생전에 알지도 못했던 영어를 동네 앞 길을 오가던 미군들 덕분에 '유에스에이'라는 것은 들어 봤지만 책으로 만나는 영어는 생소하기만  했다. 


이렇게 만난 제일 처음 영어시간은 영어의 알파벳부터 익히는 것으로, 제일 먼저 노트에 대문자, 소문자를 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흐릿하게 네 줄이 그려진 노트를 구입하여 알파벳을 쓰기 시작한 도구는 생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펜이라는 것이었다. 얇은 양철로 만들어진 펜을 구입하여 펜을 꽂는 자루에 꽂아 쓰게 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잉크를 사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 펜을 다루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이었다. 조금 힘을 주면 펜이 넓게 벌어져 잉크가 쏟아지게 되고, 잉크를 찍는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말라 글자가 되지 않는다. 더러는 힘을 주어 쓰면 노트가 찢어지는 경우도 생기는 묘한 필기도구였다. 이렇게 시작된 알파벳 익히기 학습은 배워야 하는 내용보다도 그것을 익히는데 필요한 필기도구를 챙기는 것이 훨씬 번거로운 일이었다. 


알파벳이 쓰인 영어 책을 펴 놓고 줄이 쳐진 영어 노트를 펴 놓은 후에 잉크병을 열어야 한다. 그다음에 펜으로 잉크를 찍어 글씨를 써서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어를 익히기 위해 하는 이 작업은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것들이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다. 잘 못하면 잉크를 넘어트려 잉크를 쏟아 난리가 나는 경우도 있고, 펜에 묻혀 쓰던 잉크가 튀기어 옷을 더럽힐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손에 잉크가 묻는 경우는 허다했다. 


이런 고난을 이겨내고 가지런히 쓰인 알파벳 소문자의 행렬은 아름답기만 했다. 이 아름다운 문자의 행렬은 검은색보다는 파란색으로 쓰인 것이 훨씬 시원하고도 상큼한 맛을 주었다. 하얀 노트에 비스듬히 쓰인 영어 소문자 열은 줄을 지어 파랗게 누워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간혹 검은색으로 글씨를 쓰면 둔탁하여서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파랑 잉크와의 만남은 학년이 거듭됨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데, 이후 유행하게 된 볼펜의 홍수 속에 잉크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모두가 빠르고도 간편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어, 볼펜의 사용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직장을 잡게 되자 현실은 또 달라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컴퓨터의 보급이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글씨를 직접 쓰는 경우가 드물게 되었다. 

이 일 저 일을 하고, 가끔 일상을 기록하면서 글씨를 쓰는 일이 수없이 많아졌어도, 볼펜에 익숙할 수밖에 없어 잉크의 존재는 잊혀만 갔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의 잉크에 대한 추억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 파란색으로 쓰인 글씨를 동경하고 있었나 보다. 언제나 파란 잉크 색을 좋아했지만,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은 사용할 수 없었기에 만년필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웬만한 글씨를 쓰는 일이 있으면 언제나 만년필을 소지하고 다니면서 사용하곤 했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서 면세점에 들른 것은 좋아하는 만년필을 사기 위함인데, 한참의 고민 끝에 진한 파란색으로 치장한 만년필을 구입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파란색 잉크를 구입하여 글씨를 쓰는 기분은 중학교 입학 시절의 알파벳을 써 나가는 것처럼 설레었다. 파란 잉크로 글씨를 써 나가면 잉크가 마르기까지의 시간에 반짝이는 잉크의 표정이 아름답고, 잉크가 마르고 나면 나타나는 잉크의 파란색은 싱그러움을 준다.


가끔 검은색으로 만나는 글씨는 명료하기는 하지만, 둔탁한 기분을 안겨주고 어두운 기분을 주어 가능하면 피하는 색이다. 이러한 기분에 잘 쓰는 글씨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파란 글씨를 써가면서 일상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하는 공부는 반드시 만년필을 이용하고, 일상생활에서 글씨를 써야 할 경우 만년필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파란색으로 그려지는 글씨의 매력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만년필을 애용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은 내가 만년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만년필보다는 파란 잉크색이 좋아 만년필을 이용할 뿐이다. 만년필을 이용 한 잉크 글씨를 오래 사용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만년필을 선물로 준비해 주는 경우가 있어 더욱 고맙다. 환갑을 맞이했을 때, 아내는 검은색 만년필에 이름까지 새겨서 선물하는 성의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선물로 얻어진 만년필이 세 자루인데, 모두가 의미가 다르고 쓰임이 다르지만 사용하는 잉크색은 항상 파란색이다. 큼직한 글씨를 쓰는 경우에는 아내가 준비한 검은색 만년필이 사용하기에 좋도록 부드럽고, 영어 글씨를 쓰기에는 여행 중에 준비한 파란색 만년필이 칼칼하게 쓰여 좋다. 그런데 아이들이 선물한 아름다운 문양이 있는 만년필은 날카롭고도 가벼워 숫자를 쓰기에 너무나 좋다. 


대부분을 운동과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공부도 잠깐 잊기도 해 만년필 글씨를 얼마간 소홀히 하였다. 마음에 따라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을 달래면서 다시 만난 만년필 글씨는 서툴어지고,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하는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만년필을 들어 알파벳부터 시작하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를 오늘도 의심이 된다.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언제 또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다시는 없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오늘도 공부를 하면서 파란 글씨를 쓰려한다. 책을 읽고 메모를 하면서 좋아하는 생각 쓰기를 반복한다. 많은 것은 컴퓨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옆에 놓인 만년필과 파란 잉크병에 늘 미안하기는 하다. 책상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세 자루의 만년필에 오늘도 눈길을 주면서, 만년필을 들고 다시 시작한 공부에 전념해 보리라. 다시 파란색 글씨가 영롱하게 빛이 발하는 것을 보기 위하여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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