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한을 가진 월급(남미에서 만난 설산)
월급은 일한 대가로 다달이 받는 급여, 봉급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이 일의 대가로 정기적으로 받는 일정한 돈인데, 봉급에서 한자俸은 녹봉을 뜻한다. 俸은 사람(人)에 받들 봉(奉)이 붙어 있으니 사람을 받들고 받는 녹이다. 여기에서 祿이란 곡물을 뜻하니 사람을 받들고 받는 곡식이라는 뜻이다.
봉급을 뜻하는 영어의 salary는 고대 로마시대에 군인들의 급료로 지불되었던 소금(Salt)에서 유래되었고, 소금(Salt)의 어원은 라틴어의 봉급을 의미하는 Salari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우리의 봉급과 동일한 뜻 이리라. 지금은 연봉이나 주급 아니면 시급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기도 하니, 봉급이라는 말도 듣기가 힘들지만 오래전에는 서민들에게는 뗄 수 없는 한이 서린 '봉급'이기도 했다.
글자 그대로 사람이나 회사를 진정으로 받들고 받는 녹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이 지나고 받는 봉급은 삶의 골격을 지켜주고,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 국가를 지탱해 주는 근간이 되었으니 누구나 목을 매고 바라보는 한이 서린 '俸給'이었다.
월급을 받는 날이면 월급을 계산하는 사람이 나누어 줄 양의 돈을 은행에서 받아오고, 책상 깊숙이 넣어 놓고 돈을 세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일정한 금액의 월급을 일일이 세어 누런 봉투에 담아 놓는데, 봉투에는 월급의 총액과 공제해야 하는 각종 세금 등을 세세히 적어 놓았다. 그러면 봉급 봉투를 담아 놓는 누런 상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월급봉투를 받아 금액이 맞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거의가 틀림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 세어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월급봉투에 담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얼마만큼의 주머니 돈을 만들기 위해 월급봉투를 다시 작성해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금액이 잘못 적혔다는 사람도 있어 돈을 계산하는 사람에게 피곤함과 재미를 주기도 했다.
월급날이 되면 모두는 내가 일한 것보다는 적게 받은 듯해도, 모두는 흐뭇한 얼굴을 갖고 퇴근길에 막걸리 한 잔 나누는 것은 당연했다. 평소보다 주머니가 든든했으니 서로 막걸리 값을 계산하려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외상 술값을 갚으러 가서 다시 외상을 남겨 놓고 오는 재미있는 추억이기도 했다. 더러는 월급날을 잡아 외상값을 받으려 퇴근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오라는 아내의 간곡한 독촉 전화를 받는 사람도 있다.
힘겹게 일하고 받은 돈이기에 나름대로의 용처를 확인하고 아껴가면서 집을 장만하기도 하고, 자식들의 교육이나 가용 돈으로 사용하였다. 언제나 적게 생각되고 조금 더 올랐으면 하는 생각으로 한 달을 일하지만, 언제 그 돈이 올라 만족할 수 있을까?
처음에 봉급을 받으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봉급은 부모님께 모두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봉급을 부모님께 드렸는데, 이것은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시골에서 힘겹게 농사일을 하시면서 대학까지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힘겨우셨을 테지만, 한편으로 뿌듯함으로 고단함을 감내하셨으리라. 그러기에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께 감사하면서 작은 봉급이지만, 필요한 약간의 돈만 남기고 아버지에게 봉투째 드렸다. 특별히 내가 쓸 돈이 많지 않았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다.
돈이 흔하지 않은 시골에서는 나의 자그마한 월급이 큰 위세를 과시하는 듯했다. 시골에 사는 동네 사람들은 수시로 현금이 필요했고, 월급을 받으면 아버지께 드리는 것을 동네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돈이 필요했던 동네 사람들한테는 기다려지는 그들의 봉급날이기도 했다. 큰돈이 아니지만 자그마한 시골 동네에서는 귀한 돈이기에 늘 필요했었던 돈이었으리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봉급 봉투는 이렇게 재미를 주기도 하고, 돈을 아껴 저축을 하면서 살아가는 요긴하고도 아쉬움이 남는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누구는 봉급 봉투 받아 보는 것이 원이었고, 봉급 봉투가 언제나 두툼해지는가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누구의 마음에 들도록 두툼해지는 날이 있겠는가? 언제나 아내에게 자랑스러운 두툼한 봉투를 내미는 날이 올 것인가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소원 거리였을 것이다.
즐거움과 아쉬움을 함께 주던 월급봉투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 없어지는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뒤로 튀어나온 묵직한 모니터라는 것이 책상에 등장하고, 타자기를 연상시키는 자판이 그 앞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인터넷의 시작은 기계와 거리가 먼 사람들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말았다. 우선은 자판을 두드리는 것부터 배워야 했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모두를 혼동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변하는 세월을 뒤로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서서히 우리의 생활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온라인이라는 말이 우리 귀에 익숙해지고, 인터넷뱅킹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돈이라는 것은 주머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덩달아 봉급 봉투라는 것은 불 수가 없어지고, 돈거래 없이 그냥 통장으로 돈이 보내지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버는 사람은 돈을 만져볼 사이도 없이 누군가에게 훌쩍 보내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봉급 봉투를 가지고 아옹다옹하면서 즐거움을 나누던 시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온라인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신속하고도 편리하기에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 놓았고, 봉급이 아니라 연봉이 논의되고 시급이 논의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생활에 익숙한 언어인 '쏜다'라는 말이 어느새 입에 자리하게 되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신용카드가 일상화되었다. 세월은 급속이 변하면서 얼마 전에 찾았던 중국에서는 QR코드가 일상화되어 신용카드는 쓸모가 없었음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월급봉투를 안주머니에 넣고 가슴 두근두근하던 시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모든 것이 투명하고도 신속하게 처리되곤 하는 현실이 되었다.
현금을 들고 매월 적금을 하던 시절, 돈다발을 한 뭉치 들고 부동산을 사고팔던 시절보다 편리해졌지만, 모든 것이 만족을 주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대신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언젠가는 카드도 필요 없이 말로만 해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가 오고, 온라인이 무슨 소리이고 카드나 QR코드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시대가 또 올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려니 어쩐지 버거운 생각이 드는 것은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해서인가 아니면 옛날을 자꾸 회상하는 고집 해서인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