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아이들을 키웠다.

길이 주는 어린시절의 추억(스웨[덴에서 만난 풍경)

by 바람마냥

사람의 삶에는 먼저 사람이 오고 가는 '길'이 만들어져야 했다. 집을 지을 때도 그러하고, 논과 밭을 만들면서도 길이 먼저 만들어져야 했다. 길게 뻗어진 길을 보면 우리는 '시원하다'라는 말을 우선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길'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산에 오르내리면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있으면 그 길을 따라 오르내리지만, 그 길이 불편하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다른 길을 만들어 내고 만다. 사람의 편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길은 언제나 사람이 우선이 돼야 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먼 자갈길로 학교를 오고 가던 어린 시절, 아이들은 가깝고도 편리한 길만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호기심이 많고 그리고 무엇인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가 보다. 멀쩡한 길을 놔두고 굳이 물이 고인 곳을 밟으며 가고, 걷기 편한 길을 두고도 산길을 택하면서 학교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 길엔 진달래가 피어있고, 시원한 물이 가득한 저수지가 있으며, 길가에는 파릇한 찔레순이 우뚝우뚝 솟아 있어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오르기 어려운 산길을 손수 만들며 가고, 오르기도 힘든 나무에 올라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있었나 보다. 좁고도 가기 힘든 논길을 걸어가다 논 주인에게 혼쭐이 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 길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다시 그 길을 택하고야 마는 것은 무엇인가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DSC_0827.JPG 몽골 사막에 인간이 만들어 낸 길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가다 보면 얕은 웅덩이가 있어 여름날에 멱을 감을 수도 있고, 길가 도랑에는 물가를 어슬렁거리는 가재를 만날 수도 있으며, 굵직한 개구리를 만날 수도 있다. 아이들은 개구리를 잡아 주머니에 숨겨놨던 성냥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굵직한 개구리와 가재를 잡고, 언덕 위의 마른나무를 모아 불을 지핀다. 개구리와 가재를 구워 먹으며 즐거움과 허기를 동시에 해결하는 놀 거리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더러는 개구리로 약간의 돈을 바꿀 수 있는 행운도 있을 수가 있는데, 닭을 기르는 어르신은 개구리를 모아 오면 일정한 돈을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했으니 어린아이들은 신나는 돈벌이 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가는 길가에는 어느새 버들강아지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어 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 수도 있다. 푸르른 버들가지 중에서 매듭이 없는 가지를 꺾어 양손으로 잡고, 껍질을 비틀어 주면 껍질이 비틀리면서 나무와 분리가 된다. 껍질이 비틀린 부분 중 지저분한 부분을 칼로 오려내고, 나뭇가지를 뽑아내면 껍질만 남게 되는데, 입을 닿는 부분을 칼로 얇은 껍질을 벗겨 내고 입에 대고 불면 소리가 나는 피리가 된다. 굵은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면 굵직한 바리톤 소리가, 가는 가지로 만들어 불면 소프라노 소리가 나는 좋은 악기가 된다.


아이들은 이런 재미, 저런 재미를 느끼는 사이 여름이 오면 학교를 오고 가는 길이 험하게 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비닐을 쓰고 먼 길을 오고 가야 했고, 장마가 와서 냇물이 범람하게 되면 길이 막히고 어른들의 신세를 저야만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길이 오가는 것이 항상 즐거웠다.


세월이 지나 험한 길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이들은 그 길만이 길이 아니었다. 조금만 벗어나 길을 만들면 그들이 좋아하는 푸릇한 무밭이 있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먹음직한 배가 가득한 과수원이 나오기도 했다.


반듯한 신작로를 따라서 오고 가는 길은 너무나 지루하고도 힘이 드는 길이었다. 가끔은 다른 동네로 가는 길에 접어들고, 더러는 그 동네 아이들과 입씨름 끝에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린 마음에 복수를 하고 싶어 그 길을 또 택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른들에게 붙들려 혼쭐이 나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길을 또 가게 되고, 친구가 만들어졌으니 오랜 추억이 되었다.

DSC_0817.JPG 길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가는 길에는 예기치 않은 먹거리도 있었다. 가을이 되어 푸릇한 밭에는 먹음직한 무가 푸르스름한 머리에 멀끔한 하얀 몸뚱이를 자랑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그냥 둘리가 없다. 가끔은 주인에게 혼쭐이 나기도 하지만, 어린 철부지들은 그 밭을 또 찾아야 하는 무맛을 잊을 수가 없다. 발로 툭 차서 나뒹구는 무가 좋았으니 주인에게 혼날 만도 했으리라.


가을이 깊어지고 햇살이 짧아질 무렵에 만나는 배나무 과수원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는데, 주렁주렁 달려있는 먹음직한 배는 가는 발길을 그냥 두지 않았다. 겁 없이 달려들어 배를 따먹고, 먹고 남은 것은 풀숲에 감추어 오고 가는 길의 멋진 먹거리였다. 이빨로 껍질을 벗긴 배는 달큼한 물을 흠뻑 쏟아주니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배 서리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였다.


해 질 녘에 돌고 돌아 먼 길을 따라오는 하굣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새싹이 움트는 봄철이면 나른함이 발길을 잡아 길가에 앉아 지는 해를 몰랐고, 여름이면 더위를 쫓으려 길가의 웅덩이를 찾았다. 가을에 접어들어 논에 가득한 벼의 흔들림의 물결은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으니 꼬불꼬불한 길이 훨씬 좋아 보였다. 봄이면 만나는 풀피리 소리가 그리웠고, 주인도 모르는 밭에 자라는 싱싱한 무가 비탈진 산길로 아이들을 불렀으며, 아이들은 혼을 내는 어른들 덕에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기에 철부지들은 쉬운 길인지 어려운 길인지도 모르고 첨벙거렸다. 하지만 철부지가 철이 나고 점점 성숙해 가는 것은 여러 가지 길을 걷다 만나는 자연이 있고, 자연 속에서 스스로 순화되고 깨닫는 지혜가 솟아나는 덕분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들은 길을 따라 성장했고 어른스러워졌으며, 오늘도 먼 길을 돌고 돌아 멋진 어른으로 성숙하게 익어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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