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입맛을 그냥 두지 않는다.

(커피 이야기, 쿠바 :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Havana club)

by 바람마냥

커피는 그래도 믹스커피가 최고지, 언제나 친구들과 커피 한 잔 마시며 하는 소리이다. 자전거 타고 큰 들판을 한 바퀴 돌고 마시는 커피야 무슨 커피인들 맛이 없겠는가? 식당에 들러 질펀한 저녁과 소주를 한 잔 했다. 출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믹스커피 한잔을 뽑았다. 식당 밖에 있는 허름한 의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 구수하고 달달한 믹스 커피가 역시 최고의 맛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턴가 커피의 풍속도와 입맛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시내는 물론이고 그럴듯한 장소에는 여기저기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자그마한 농촌에도 커피전문점이 들어섰다. 식당에도 언젠가부터 믹스커피와 함께 원두커피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예전 같았으면 소주 한잔하고 당연히 들러야 하는 노래방이 시시해졌다. 노래방 대신 가는 곳이 커피전문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싼 값도 아닌 커피를 한 잔씩 시켜 시대 조류에 합류해본다. 무엇을 마셔야 하나? 많고도 어려운 이름으로 선택도 주문도 어렵다. 어느 것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달달한 아포가토를 단골 커피로 삼는다.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 한 잔을 끼얹었으니 달콤하면서도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는 이탈리아의 디저트가 단골 메뉴이다.


커다란 커피 잔에 가득히 부어주는 커피가 왠지 낯설지 않다. 언제 다 마실까 고민했지만, 한참 동안 앉아 마셔야 하는 커피라 많은 것이 아니란다. 젊은 친구들은 커피 한 잔 시켜 좋은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한다. 컴퓨터를 꺼내 놓고 열심히 서류를 정리한다. 어쩐지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지만,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었다. 아침 운동을 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킨다. 더움에 죽을 것 같던 몸뚱이는 시원함에 몸서리를 친다. 정말 미칠 것 같은 커피 맛이다. 믹스 커피 입맛에서 알지 못했던 아메리카노 입맛으로 서서히 적응되어 가고 있다.


자전거 길에서 만난 커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 타고 지나는 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구입했다. 시골길에서 만나는 값은 그야말로 착한 값이다. 아침나절에 2,000원이면 고맙다며 반겨준다. 준비해 간 보온병에 얼음과 함께 넣어 자전거에 실었다. 한 참을 달리다 힘에 겨워 쉴 때쯤, 얼음이 적당히 녹은 쌉쌀한 커피맛은 지친 근육마저 넉넉히 풀어준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면 족했던 입맛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도록 했다. 세상이 간사한 입맛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20180115_132610.jpg 커피 내리는 여인, 쿠바에서 : 본인 촬영

에스프레소, 고압으로 빠르게 추출해 드미타스(demitasse)라는 작은 잔에 주는 이탈리아식 커피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군들이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났다.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에스프레소에 따스한 물을 넣었더니 입맛에 맞는다. 에스프레소 향은 남아 있지만 부드러운 맛이 있어 미군들이 마시기 시작한 커피, 미국 사람들의 커피, 아메리카노가 되었다. 아메리카노가 우리의 입맛을 서서히 점령하고 있다.


오래전, 부유한 이웃집에서나 마시던 커피였다. 왠지 사치스러운 커피였고, 부담스러웠던 커피가 믹스커피라는 만만한 커피로 입맛을 길들여 놓았다. 외국 여행길에서 만나는 구수하고 달달한 믹스커피는 영혼까지 흔들어 놓고 말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한동안 화려했던 믹스커피도 다양한 커피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간사한 입맛이 어느새 눈을 돌리게 되었고, 곳곳에 자리한 커피 전문점은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은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웬만한 서민들의 한 끼 밥값에 해당하는 커피 값, 서서히 가격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기천원짜리 커피로 기가 막히는 자리에 앉아 본전을 넉넉히 뽑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맛이야 다르지만 다양한 커피값이 등장했다. 사람이야 맛 대비 멋진 값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던가? 어느새 2,000원도 좋다 하고, 심지어 1,000원이어도 좋단다. 서민들이야 어떠랴? 값이 싸고 맛이 있으면 더 말할 것이 있던가? 다양한 커피에 값도 다양해졌다. 간사한 입은 달달하고 구수한 믹스커피 맛에서 깔끔하고 구수한 맛으로 서서히 옮기고 있다.


널따란 잔디밭이 있고, 가끔은 찾아오는 산새들이 있다. 느지감치 햇살이 찾아오는 창가에 앉아 있다. 거기엔 조용한 정적이 있고, 따스한 햇살이 찾아왔다. 아무 생각도 필요 없고, 사람도 오지 않아도 좋다. 거기엔 달달한 믹스커피도 좋고, 구수한 원두커피여도 상관없다. 어느 순간 구수한 커피 향이 온 집안을 메워준다. 한 나절을 멍하니 앉아 생각 없이 보내고 있다. 커피 값이 걱정 없고, 자리를 따로 탐 낼 필요가 없다. 어느새 입이 커피 맛에 익숙해지고, 시골집도 그 맛에 넋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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