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진, 정말 국수를 좋아하셨습니까?

(국수가 주는 아버지의 추억, 아바나 시장)

by 바람마냥

아버진, 정말 국수를 좋아하셨습니까? 그렇게 국수가 좋으셨나요? 언제나 고단한 농사일에 허리 휘는 줄도 모르는 아버지는 늘 식성이 왕성하셨다. 사기그릇으로 된 커다란 사발에 쌀과 보리가 반반씩 섞인 밥이 밥사발 안쪽은 물론이고, 위쪽으로도 고봉으로 드셨으니 농사일의 고단함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 아버진 국수를 늘 좋아하신다는 말씀과 함께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는 손칼국수를 두 그릇씩 드셨다. 먹거리가 적당치 않고 쌀도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정말로, 국수를 좋아하시었을까?


초가지붕이 마주 보고 서 있는 안채와 사랑채를 안은 작은 언덕 뒤에는 제법 커다란 밭이 있었는데, 전에는 어느 집이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집 대문으로 들어가는 한쪽에는 제법 커다란 고욤나무가 있고, 늦봄이면 고염 꽃이 떨어져 제법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어 주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은 살기가 어려웠는지 대처로 나가게 되어 집을 헐고 밭이 만들어졌다.


밭을 아버지께서 구입을 하셨는지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곤 하셨고, 주변엔 밤나무와 감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제법 쏠쏠한 재미를 갖게 했다. 밭엔 아버지가 늘 밀을 뿌리고 가꾸어 식량의 일부분으로 대신하였는데, 가끔은 대충 익은 밀을 잘라 불에 그슬려 '밀떼기'를 해 먹기도 했다. 불에 밀을 그슬린 다음 손에 놓고 비비면 검은 껍질이 벗겨지면서 검정이 손에 묻어나고, 이것을 입에 넣는 과정에서 얼굴엔 검정이 묻어나기도 한 기억이 난다. 바람이 불면 파란 밀밭이 푸른 파도를 만들어 멋진 풍경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으나 나이가 들어 한참이 지난 이후에나 풍경이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늦가을에 밀을 심은 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게 되면 파란 싹이 돋아나게 되는데, 겨울에 얼고 녹는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밀밭은 얼음으로 들떠 있게 된다. 그러면 밀의 뿌리가 땅에 안착하도록 밀밭을 밟아 주는 과정을 거치고, 여름의 기나긴 비바람을 견디어야 가을의 풍성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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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부모님은 밀밭을 매고 비료를 주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 가을의 결실을 맺게 되는데, 벼와는 달리 밀에는 가는 수염이 있어 밀을 베고 터는 과정에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손에 닿으면 따갑기도 하고, 옷 속으로 들어가면 온몸이 가려워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 밀을 얻게 되고 이것을 방앗간에서 도정과정을 거쳐야 하얀 밀가루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엔 밀 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아, 동네 입구에는 밀가루를 이용하여 국수를 만들어 주는 가게가 있었다. 햇살이 좋은 날에 하얀 국수를 만들어 바람과 햇살을 이용하여 국수를 건조하였다. 하얗고도 기다란 국수를 건조대 위에 걸어 놓고 있으면 작은 바람 따라 일렁이고, 하얀 햇살에 반짝이는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시골의 멋이었다. 이렇게 국수가 건조되면 기다란 칼로 적당한 길이로 절단한 다음, 누르스름한 종이로 중간에 말아 풀을 붙이면 국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요즈음의 잔치국수인데, 국수를 하는 날이면 이웃을 불러 모아 국수를 나누어 먹으며 고단한 하루 일을 마무리하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고단함에 시달려서인지 언제나 국수를 두 그릇씩이나 거뜬히 비우시곤 하셨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자주 국수를 주문하셨는데, 정말 국수가 좋아하셔서인지, 아니면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 쌀을 아끼시려 했는지 늘 궁금했다. 국수를 만들고 남긴 밀가루는 어머니에게 즐거움과 고단함을 동시에 주는 칼국수가 되어야 했다. 하얀 종이를 마루 위에 펴고, 물에 버무린 밀가루 반죽을 널빤지에 놓은 후, 홍두깨로 미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의 고단함을 무릅쓰고 밀가루가 어느 정도 밀어지면, 이것을 넓적한 형태로 켜켜이 접어 칼로 썰었다.


국수를 썰고 남은 꽁지를 화롯불에 구워 먹는 재미도 쏠쏠하여 언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은 아이의 버릇이기도 했다. 이것을 여러 가지 우려낸 육수에 끓여 각종 양념을 곁들여 내는 것이 칼국수인데, 아버지는 이 칼국수를 특히 많이 드셨다. 아무 말씀도 없이 칼 국수를 드시는 아버지를 지금 회상해보면, 고단한 농사일을 짐작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어른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그 국수를 그렇게도 싫어했다. 그러했기에 어머니는 늘 밥과 국수를 동시에 하시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셨다. 지금은 찾아다니면서 먹는 칼국수를 왜 싫어하면서 어머님을 성가시게 했는지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언제나 국수를 원하셨고, 아이는 국수를 입에 넣으면 약간 스치는 밀가루 냄새 때문에 싫어했다. 어머니는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철부지 아이는 눈치도 없이 언제나 국수를 싫어했는데, 아버지는 정말 국수를 좋아하시었습니까? 그렇게도 맛이 있으셨습니까?


어려운 살림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아버지는 정말 국수를 좋아하시었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오래전, 당신을 생각나게 하는 국수가 당신을 닮았는지 왠지 저도 무척 좋아졌습니다.

국수를 먹으려 오늘도 국숫집에 자리를 잡고 당신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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